문화n라이프
[책세상]서로에게 침묵하는 목격자가 안 될 용기
이라영의 '폭력의 진부함'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9.11. 00:00:00
그의 복기는 1980년대 중후반에서 시작돼 2018년까지 닿는다. 그 과정에서 중학교 시절 겪은 최초의 성추행을 나이 서른이 넘어 인지할 정도로 일상의 폭력이 어떻게 우리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폭력과 차별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버스에서, 지하철 안에서, 대학에서, 동아리에서, 지인의 집에서, 사무실에서, 출장지에서 무시로 일어났다. 개인적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예술사회학연구자 이라영의 '폭력의 진부함'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차별과 폭력이 특별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일상적 현상임을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적인 역사를 복기한 뒤 사회적 사건들을 분석했다.

그는 폭력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사회의 약자와 소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고 했다. 폭력을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으로서의 인격'을 박탈당한 이들이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폭력에 맞서는 개개인의 발화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19세기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를 불러왔다. 어린 시절 노예였던 더글라스는 나이가 몇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더글러스는 피지배자 자신이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게 만드는 지배 권력에 저항하면서 적극적으로 초상을 남겼다.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더글러스의 사진은 소수자로서의 수치심을 떨쳐버리려는 실천이었다.

자기 이야기의 주인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이들은 목소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직접 설명하지 못하는 고통은 타자화되어 해석당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하고, 이름 없는 자의 이름을 부르자. '우리'는 서로에게 침묵하는 목격자가 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갈무리.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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