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리법칙은 관측하는 사람의 상태와 무관하게 같다. 이것은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다. 즉 정지한 상태의 관찰자건, 등속 혹은 가속도로 운동하는 상태의 관찰자건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우주 어디에서나 물리법칙은 바뀌지 않으므로 상대성이론이라 해서 절대성에 가까운 보편적인 원리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관측된 계에 따라서 길이와 시간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잘못 해석해, 관측하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물리법칙이 달라지거나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가위 연휴 중 지인이 제주를 방문했었다. 이제 스물을 넘긴 자녀들이 있어서인지 월정과 애월 해안도로의 카페를 찾겠다고 했다. 갑자기 제주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스러웠고 제주도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제주도는 카페 천국이 되고야 말 것인가. 몇 해 전 친구가 소개한 이탈리아인 디자이너 말이 귀에 쟁쟁해서 씁쓸했다. 그 이탈리아인이 성읍민속마을을 방문하고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었는데 제주인들의 삶과 역사를 그곳에서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제주를 찾는 이들이 성읍민속마을을 핫 플레이스로 생각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제주도가 18, 19세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향성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제주도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산들이 가치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시대에 따라 그 가치 기준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 플래카드를 내걸고 외치는 말들이 제주도의 환경과 생태가 아닌가. 왜 이 말들이 활자로만, 소리로만 무성하고 실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가. 만약 제주를 찾는 이들이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무관하게 놀이터 정도로 여기며 찾는다고 해도 이는 모두 우리 제주의 책임이다. 박리다매(薄利多賣)를 경기 침체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상품의 가치 하락이고 나머지는 노동과 간접비용의 증가이다. 결국 제살을 깎아먹는 꼴이다. 지인이 제주를 방문하고 이상하다며 렌터카 하루 임대료가 100원이라는데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어왔었다. 뭐라고 대답을 했어야 했지만 부끄러워서 그 실상을 알려줄 수가 없었다. 최근 해수욕장 잔디밭이 캠핑장으로 사용되면서 쓰레기 문제가 제기됐다. 이 문제도 결국은 제주의 자산인 환경과 생태를 싸게 팔아먹은 결과에 불과하다. 모든 물리법칙은 관측하는 사람의 상태와 무관하게 같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제주도 환경과 생태의 청정과 자연스러움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절대적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상대성이론으로 말하자면 '환경과 생태'는 'm(물체의 질량)'이기도 하면서 'E(에너지)'가 되는 셈이다. 제주도의 방향성에서 '환경과 생태'를 예외로 하거나 상대적인 관점으로 접어둘 수가 없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굴지심과 자기비하로 우리 제주도가 얻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후손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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