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춘희막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올해는 조용하게 지나갔다. 짧지 않은 연휴의 마지막 날 뉴스에서는 소통이 무척이나 원활한 고속도로와 국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전국 여기저기를 보여주는 화면 속에 교통체증은 없었고 오히려 평소보다 한산해 보이는 낯선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요한 평화 라기 보다는 쓸쓸한 침묵처럼 느껴졌다. 올해 초 코로나19의 반갑지 않은 방문 이후 인간의 세계에는 빗장이 걸렸다.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손을 잡고 안으며 서로의 온기로 힘을 얻는 일련의 집단 행위들은 타의로 그리고 자의로 금지되고 자제됐다. 사랑과 욕망을 전하던 입 모양은 마스크에 가려져 볼 수가 없고 각자의 눈동자에 담긴 피로와 불안이 또렷해 살가운 눈인사를 나누기에도 어려운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짐작보다 더 큰 불안의 지속, 우리는 외롭고 서러운 마음의 모양을 둥그렇게 모아 어두운 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매일의 꿈으로 향하고 있다. 한산했던 지난 추석 연휴, 바닥에 누워 다큐멘터리 '춘희, 막이'를 보았다. '춘희, 막이'는 박혁지 감독의 2015년 작품으로 남다른 인연으로 생의 끝자락을 서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역과 태풍으로 두 아들을 잃은 큰댁 막이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작은댁 춘희를 집안으로 들인다. 사이에 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도 춘희와 막이는 46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특별하다고 하기엔 길고 모진 인연이다. 카메라는 이 범상치 않은 인연의 두 사람 춘희, 막이의 하루 하루를 찬찬히 살핀다. 둘은 함께 밭일을 하고 함께 밥을 지어먹고 함께 잠을 청한다. 함께 간 시장에서는 춘희 할머니의 신발만 산다. 깔끔하고 깐깐한 막이 할머니는 헤비 스모커인데 연기를 훅하고 날릴 때는 근사한 멋이 있다. 춘희 할머니의 시선은 늘 엄마 같고 언니 같은 막이 할머니를 향한다. 혼자 어딜 다녀와도 막이 할머니 몫의 음식을 소중하게 챙긴 춘희 할머니는 막이 할머니가 집을 비운 하루,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막이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운다. 함께 걷지 않아도 한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두 노인은 서로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닿는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평생 동안 우리는 누군가와 얼마나 많은 마음의 접촉을 하고 살아가는 걸까. 두 노인이 서로 긁어주고 두들겨주는 손과 등의 거리가 울컥하는 마음의 움직임으로 전해져 왔다. 울고 싶은 모두에게 등짝을 내어주고 두들겨 줄 한 사람이 있길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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