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이른바 '집콕' 중인 것과 마찬가지로 필자가 사는 미국 역시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으로 다들 사회생활을 삼가고 집에 있는 분위기다. 한동안 집 근처와 필수적으로 들르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나가 본 적이 없던 와중에 얼마 전 중요한 볼일이 있어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에 다녀왔다. 시내와 그 주변의 차량 정체와 주차난은 유명하기에 고민 끝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워싱턴 디시까지는 통근 열차가 다닌다. 열차 안에 사람이 많을지는 몰라도 열차를 타면 약속에 늦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KF-94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충분히 챙긴 뒤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던 기차역도, 복잡하던 거리도 너무나 한산해서 낯선 곳에 온 느낌이었다. 열차의 좌석과 입석을 꽉 메우던 사람 중 많은 수가 이제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을 것이고, 또는 다닐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쉴 새 없이 바삐 돌아가던 사회가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 때문에 기약도 없이 멈춰 서버렸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이 상황이 고생스럽기는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통제에 실패한 미국이 입은 타격은 한국의 그것과는 비할 수 없이 크다. 집계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2000만명에서 크게는 4000만명 정도가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급식이 유일한 끼니였던 많은 아이들 때문에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와중에도 휴교 결정이 몹시 어려웠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더니, 어렵게 휴교와 원격 수업이 결정된 뒤에는 집에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도 걱정이다. 미국 가정의 15%는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고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그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진다. 며칠 전에는 학교에 찾아와 학교 담장에 기대어 무선 인터넷 신호를 잡으며 공부하는 아이 사진이 보도돼 어른들을 가슴 아프고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병에 걸릴까 두려운 불안감 자체는 물론이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2차적으로 가져온 막대한 경제적 타격,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것들로 인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다. 불안은 물론이고 우울,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같은 문제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용암처럼 조용히 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오기 힘든 곳이 정신과인데 코로나 때문에 대면 진료나 왕진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원격 진료로는 부족하기만 하니 정신과 의사로서는 걱정되고 답답한 마음이다. 텅 빈 열차에 앉아, 그곳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처럼 각자가 '콕' 박혀 있는 상황에서도 가족과 이웃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베푸는 사랑만큼,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도 중요하다. 코로나는 조심하되 필요할 때는 꼭 목소리를 내어 주길, 그렇게 모든 이가 무사하기를 바란다. <이소영 미국 피츠버그대학병원 정신과 전문의>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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