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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의 월요논단] 인도(印度) 알기 10 : 문화 유산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11.16. 00:00:00
인도에는 스페인과 중국처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많고 다양하다. 1983년 아잔타.엘로라 동굴, 아그라성과 타지마할부터 시작돼 2019년에 38번째로 자이푸르시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필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인도의 문화유산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으며, 실제로 열아홉 군데를 직접 찾아가 봤다.

오늘은 이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공작왕좌(Peacock Throne)와 인도가 아닌 영국에 소재중인 코이누르(Koh-i-Noor) 다이아몬드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왕좌 윗부분에 각종 보석으로 만든 2개의 공작이 있어 명명된 공작왕좌는 무굴제국 전성기 샤 자한의 명령으로 7년에 걸쳐 만들어져 레드포트내 황제의 개인 접견실에 비치돼 있었다. 1660년대 인도를 여행했던 프랑스인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에 의하면 길이 1.8m, 폭 1.2m, 높이 1.2m에 이르렀는데, 4개의 기둥 사이 중간기둥은 커다란 루비로 장식됐고, 200개 이상의 루비가 사용됐다고 한다. 그 제작비용은 타지마할 건축비용의 2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3배 이상이나 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이 왕좌는 루비, 다이아몬드, 석류석, 진주, 에메랄드, 금 등으로 장식됐으나, 루비가 가장 인기가 좋고 비쌌는데, 그 이유는 무굴제국이 보석들 중 루비를 가장 좋아하는 몽골인들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사실 무굴은 몽골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1739년 페르시아 나디르 샤가 코이누르와 함께 이 왕좌를 전리품으로 가지고 가버렸다. 이 중 일부는 왕관 보석으로 사용했고 나머지는 오스만 제국에 팔아넘겼다. 이 왕좌의 가치가 대단해서 나디르 황제는 3년간 세금을 거두지 않았을 정도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사라진 전설상의 유산이 돼버린 것이다.

다음은 코이누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디르 황제가 델리 침공 시 빼앗고는 이를 본 후 “코이누르!"(Mountain of Light)라고 감탄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의 텔랑가나주 골콘다 광산에서 캔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초에는 191캐럿(38.2g)이었으나, 1852년 리 커팅 후 105.6캐럿(21.12g)으로 줄어들었다.

이 보석은 당시 최대의 다이아몬드였던 만큼 이를 탐내는 자들 또한 많았다. 알루딘 칼지가 남부 인도 침략 시 획득한 이래, 델리 술탄들, 무굴제국을 건국한 바부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를 거쳐 나디르 황제의 손에 들어갔다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와 그의 후손을 거쳐 시크 황제에게 넘어갔고, 제2차 영-시크 전쟁 직후인 1849년에는 공식적으로 빅토리아 여왕에게 양도됐다. 이후 대대로 영국왕가에서 상속됐는데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안전상의 사유로 런던타워에서 원저 궁으로 옮겨놓기도 했다. 지금은 런던타워 주얼 하우스에서 공개전시 되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이 이를 보려 방문하고 있다.

한편 영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 및 아프가니스탄 간에는 코이누르 소유권을 둘러싸고 외교적 논쟁이 계속돼왔다. 특히 인도는 독립하자마자 1947년과 1953년에 반환을 요구했고, 2000년에는 인도 의회가 공식 서한을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성은 제주도국제관계대사.전 뭄바이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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