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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다시 보는 ‘당나귀’ 우화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12.02. 00:00:00
이솝 우화 ‘팔러 가는 당나귀’를 다시 본다.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팔러 가는 도중에 참견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다 종국엔 당나귀를 잃는다. 시기와 주인을 잘못 만나 물에 빠져 죽은 당나귀가 가엾다. 당나귀를 잃은 주인도 불쌍하다. 사달의 책임은 줏대 없는 주인만 아니라 남의 일에 쓸데없이 끼어든 사람들에게도 있다. 이 우화 때문에 생긴 일화가 있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라는 소위 '당.나.귀’ 건배사가 있는 자리였다. 누군가, 제목이 '팔리러 가던 당나귀'라야 맞는다고 했다. 그 사람은, 별거 아닌 것에 트집이냐고 힐난하는 사람과 ‘당나귀 싸움’을 크게 했다.

요즈음 나라 안 현실은 이 우화나 일화보다 훨씬 더 심하다. ‘백가’가 '쟁명'하는 시대다. 학자, 문인 등 지식층이 활발한 논쟁을 하는 태평한 시대가 아니다. 곳곳에서 자기주장들이 난립하고 충돌한다. 트집과 험담, 간섭과 비난이 넘친다. 정치와 사회, 공식적인 회의와 정상적인 조직에서는 물론 에스엔에스와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무대가 다양하다. 합.불법과 소위 팩트와 가짜 뉴스,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사실에 근거한 반진실(半眞實)이 선전, 선동과 이전투구에 등장한다. 이런 싸움은 분야와 계층, 권한과 소관이 따로 없이 일어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르겠다.

이 싸움판들은 통제가 어렵다. 주변의 무관심과 외면, 방관도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무책임한 방임이 지각없는 참견만큼이나 해롭다. 모두가 사회적 존재로서, 이웃을 위해 참여해야 한다. 의사 결정의 대행과 조정이 본분인 기관이나 단체도 역할을 제대로 잘 못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저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서로 다투는 거다. 방임이 기폭제이자 추진제다. 불필요한 싸움은 생겨나고, 필요한 참여는 드물다.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존재도 드물다. 있어도 침묵한다. 분야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아픈 공동체다.

우리 제주는 달랐으면 좋겠다. 제주의 현실이 지금 나라 안의 세태를 닮아선 안 된다. 서로 트집을 잡고 다투는 사이, 손 놓고 방관하는 틈에 우리 ‘당나귀’가 죽는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이는 개인이나 지역사회에게도 마찬가지다. 직간접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거나, 얻은 교훈에서 지혜를 도출하지 못하면 거기엔 희망이 없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자기의 도리와 직분을 잘 지켜야 한다. 서로 다투기보다는,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라고 한다. 이런 역할이 충만한 세상을 무척 보고 싶다. 우리 제주만이라도 이런 세상이면 좋겠다. 대안 없는 비난과 추잡한 싸움으로 백성을 힘들게 하는 행태는 본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의 성장 발전을 위해 쏟을 지혜를 함께 찾으면 좋겠다. 위 '당나귀 싸움'의 원인들은 쓸데없는 참견일까, 건설적인 참여일까? 판단의 기준은, 그게 건강한 사회의 구현에 기여하는가 여부다. 태평한 세상이 곧 건강한 사회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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