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전 묵은가름에 정착하며 시작돼 백록담 정기받고 남쪽 바다 검은여까지 말 진상·군사훈련 장소 등 옛지명 남아 산악인 오희준·나비학자 석주명 숨결도 한라산을 넘어가는 길, 양옆의 나무들이 앙상히 가지만 드러낸 채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하지만 산을 넘어 남쪽에 다다르니 풍경은 달라진다. 초록 잎사귀의 귤나무에 주황색 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귤의 무게에 가지가 휘어진 채 담장 밖으로 꺾이듯 뻗어있는 나무들까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하다. 바위가 검다하여 검은여라 불린 곳, 낚시 포인트로 유명하다 토평동의 역사는 약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김씨, 오씨, 정씨가 지금의 정방폭포 위쪽 묵은가름에 정착해 살며 시작됐다. 하지만 해안가에 위치해 자꾸 물에 빠져 죽는 이가 많아 마을의 터를 지금의 중산간지대로 이주했다. 이 곳에 오니 땅도 비옥하고 멧돼지 등의 사냥거리도 많았다. 그래서 이 곳을 돗드르(猪坪里)라고 했다. 이후 1925년 정의계 우면 토평리로 개칭하고 1955년 서귀읍 토평리가 됐다. 검은여 앞바다에서 바라본 풍경 토평어촌계가 자리한 검은여(거문녀)는 서귀포시 칼호텔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다. 밀물에는 잠기고 썰물에는 드러나는 커다란 바위가 검은색을 띄어 검은여라 불린다. 과거에는 이 바위를 의지해 테우를 타고나가 낚시를 하고 해조류를 채취했다. 변변한 포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던 시절에는 훌륭한 포구가 돼주었던 장소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서귀포 70경, 영천 9경에 속하는 절경이다. 여름이면 물맞이 장소로 유명한 소정방폭포. 오희준 기념공원의 추모탑 오희준 기념공원 맞은편에는 석주명 기념비가 있다. 나비학자로 유명한 석주명선생은 1943~1945년 이 곳 토평동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 근무했다. 석주명 선생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나비와 곤충은 물론 제주도 방언 등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제주도 총서 6권으로 제주학의 시초가 됐다. 석주명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이 근무했던 경성제국대학 약학연구소의 모습. 최근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됐다. 마을을 따라 영천이 흐른다. 물과 땅과 산과 바다가 다 들어있는 마을이다. 풍요로움이 오롯이 느껴지는 토평동이다. 풍성한 수확을 끝낸 농부의 마음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토평동이 자연그대로 잘 남아있길 바란다. <글·사진=조미영(여행작가)> [인터뷰]김규완(토평동마을회 회장) “돈내코 산책로 조성해 일출명소로”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토평동이다. 선생님이 제주에 계실 때 머물렀던 현 제주대 아열대농업생명연구소가 최근 국가지정 등록문화재가 됐다. 그리고 토평동 출신 산악인 오희준 기념공원이 있다. 그리고 토평초등학교는 배구명문이었다. 국가대표는 물론 프로선수로 뛰는 토평 출신 선수들이 많다. 돈내코 주변을 정비해 여름철 명소로 활성화시킬 예정이다. 현재도 여름이면 마을부녀회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산책로를 조성해 일출명소로 가꿔갈 생각이다. 토평공업단지가 조성된 지 30년이다. 침출수와 비산먼지 등의 환경오염의 요인들이 많은데 대책이 미비하다. 대규모 공업단지가 아닌 공업지역이라 별다른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행정의 적극적인 지도감독이 요구된다. 또한 헬스케어타운의 추진이 흐지부지 상태다. 빠른 매듭으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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