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지인이 한숨을 내쉬며 하소연을 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는데 서류를 보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류 보완이 뭐 힘든 일이라고 하소연까지 하나 싶겠지만, 보완을 요청한 이유를 들으니 그럴 만했다. 심의위원은 공간 대표로 표시된 홍보물이나 신문 기사는 전시를 기획했다는 증빙자료가 될 수 없으니, 기획에 이름이 들어간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전시 공간 운영은 예술 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공간 운영뿐 아니라 전시 기획에도 참여했으나, 지금까지 공식 홍보 자료에 공간 대표로만 표기해서 어떻게 기획 참여를 증명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일은 예술 활동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일까지 예술 활동으로 볼 수 있는가? 최근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 장르가 생겨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예술 활동이 생겨나고 있다. 예술 활동의 범위를 묻는 물음은 이러한 현대 예술의 현황을 묻는 말이라 여겨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성찰해야 할 문제를 잘못 파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예술가에게 증명서를 요구하는가를 질문해야 했다. 예술 활동을 즉 예술인임을 증명서로 증명하게 하는 이 제도가 예술가를 지금과 다른 개념으로 바꿔놓을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하기 위해 증빙서류를 챙기면서 미술계에서 일어난 몇몇 일들에 의심이 생겼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부터 큐레이터의 이름이 엽서, 현수막과 같은 홍보물에 갑자기 등장하기 시작한 이유가 큐레이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활동증명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예술가라는 용어 대신 예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명칭에도 의구심이 든다. 예술가가 아닌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까지 수용하기 위해 예술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예술가의 개념을 교묘히 교란하는 듯 보인다. 예술활동증명은 승인받기까지 최소 4주 이상 걸린다. 그런데 요즘 들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서를 요구하면서 신청하는 사람이 급증해서다. 예술인복지재단 웹사이트의 "사업참여의 첫 단추!"라는 예술활동증명 홍보 문구가 그대로 현실에 실현되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관련 예술가를 위한 재난지원금 신청에도 예술활동증명서를 요구했다. 이제 곧 엽서, 신문 기사 등으로 예술가임을 증명하던 시대에서 증명서로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시대로 바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당연히 여겨질 것이 걱정이다. 예술활동증명이 유용하거나 편리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위험성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1년이라는 짧은 유효기간, 승인까지 걸리는 오랜 시간 등으로 인한 불편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증명되어야 하는가?'와 같이 뜬금없고 답이 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제도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적어도 이러한 제도가 기존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예술가는 작품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증명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연주 문화공간 양 기획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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