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는 옆길로 새지 않고 제주 풍경을 붙잡았다. 이 땅의 산과 바다, 들꽃이 그의 그림에 가만히 둥지를 틀었다. 서양화가 이옥문이다. 전업작가로 한길을 걸어온 이력과 제주 소재에 대한 천착 때문인지 그의 작업엔 '정직하다'는 세평이 따른다. 충실히 다져진 바탕 위에 요령이나 기교 없이 제주섬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이다. 갤러리 이디에서 마련한 제주 중견 작가 11인 초대전에 나온 '한라산이 보이는 풍경' 등 세 점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완성된 '한라산이 보이는 풍경'은 여러 번에 걸쳐 천천히 그려진 유화 작품이다. 서귀포를 오가며 만났던 풍경을 마음에 간직했다 형상화한 그림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한라산이 그곳에 있다. 봉우리가 도드라진 그의 한라산엔 단풍 든 나무들이 덩어리처럼 묘사됐다. 한라산을 그렸으되 그의 붓질이 오래도록 머문 장면은 개개의 나무들이 이룬 숲이 전하는 그 계절의 색이기 때문이다. 가을 나무에 물든 갖가지 색을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합치고 분해시키며 빚어냈다. 흔히 붉은 단풍이라고 부르지만 작가가 포착한 한라산의 가을 색은 그게 아니다. 그것은 햇빛과 바람에 의해 물드는 빛깔이 제각각인 갈옷의 색깔을 닮았다. 제주 풍경화 작업을 30년간 이어온 이 작가는 근래 "빈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며 "이전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오랜 시간 제주의 색을 찾아왔다는 그는 "이제야 조금씩 뭔가 보이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천변만화하는 제주의 날씨처럼 제주의 색은 작가의 창작열을 자극한다. 그가 이즈음 눈길을 두는 제주의 색은 "비 온 다음의 억새와 같은 물먹은 갈색"이다. 제주 풍경을 진득하게 캔버스에 품고 끊임없이 새겨보는 과정에 마주한 색으로 거기엔 거친 화산토를 일구며 살아온 섬사람들의 생애가 스몄다. 이 작가는 제주대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작가 초청전, 기당미술관 3인 초대전, 제주 아시아 현대미술 특별교류전 등에 참여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