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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은 가까이 다가가서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1. 02.24. 00:00:00
코로나19가 인류사회의 많은 삶의 양식들을 변하게 했는데, 그 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오랜 설 풍속도마저 달라졌다. 외지나 외국에서조차 고향으로 찾아오던 이들도 아쉬운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마음의 선물을 들고 찾아뵙던 세배의 풍속도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디 이뿐인가. 경제 활동의 시장 개념도 급속도로 인터넷 플랫폼으로 전이될 것이 분명하다. 향후 몇 년은 이런 혼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은 문득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 지난겨울 몹시도 추웠고 따뜻한 남쪽나라인 제주에도 폭설이 내린 까닭인지 봄의 기운이 청명한 지금 이때에 밖으로 나아가서 들길이라도 걸어보고 싶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봄을 맞이하며 꼼지락거리는 모습들을 더듬어보고 싶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생명이 아닌 흙과 돌멩이 그리고 바람과 물에 대해서도 경원시했던 것처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내가 살아가면서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는 이런 모든 것들은 생명의 조건인 셈이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윤선도(尹善道)의 '산중신곡(山中新曲)'에는 '오우가(五友歌)' 6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 여섯째 수에서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니/밤중에 밝은 빛이 너만한 것 또 있겠는가/보고도 말이 없으니 내 벗인가 하노라."라 하여 달의 불언(不言)을 노래했다. 불언이란 '노자(老子)' 2장에 의하면 성인의 가르침이다.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삭막한 천체물리학으로 보면 달은 태양계의 한 행성인 지구 주위에 매달린 위성이란 천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주의 먼지인 암석질의 물체들이 응결돼 생성된 달이 윤선도에게는 성인처럼 보였으며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크기를 우리의 셈으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백혈구나 적혈구보다 훨씬 작다.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세균보다 훨씬 작은 병원체다. 21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과학에 의해 만들어낼 수 있는 핵폭탄이 지구의 중심부에서 폭발한 것보다 더한 충격으로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오랜 삶의 양식마저도 변화시키고 있다.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속성을 다 가지고 있는 이 바이러스에 의해 21세기는 대변혁을 맞이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도대체 우리 인류가 자연을 향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공존하거나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인 것일까.

제주도의 봄은 빛깔과 향기만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아니한 것들마저도 가슴이 뭉클하게 아름답다. 사계절이 뚜렷한 어느 지역이나 봄은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제주의 봄은 그 중에서도 특별하다. 이런 봄날 하루는 핫옷을 벗어버리고 자연 가까이로 가서 물어보거나 찾아보고 싶다. 언제나 그럴 만한가, 지금도 그런가. 낼 모레면 정월대보름이다. 그 달을 닮은 노란 산민들레라도 만나면 퍼질러 앉아 어루만져보겠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봄 햇살처럼 반짝일 터이고 나를 생각하면서는 오직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융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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