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유방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몇 시간 전부터 갑자기 39℃ 고열과 오한이 나 응급실을 찾아왔다. 혈액 속 백혈구 수가 정상인의 1/5밖에 되지 않았다. 바로 입원해 치료 계획에 따라 정해진 항생제 투여가 시작됐다. 입원 3일 후 열이 정상으로 내려갔고, 백혈구 수도 정상 수준으로 회복돼 일주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백혈구는 여러 가지 병원체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혈액세포다. 그러나 백혈구란 한 종류의 세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5가지 세포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의학용어다. 백혈구들의 약 60%가 중성과립구(중성구)이고, 30%가 림프구, 그리고 단구, 호산성과립구(호산구), 호염기성과립구(호염구)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이들 가운데 세균감염을 막아 주는 핵심 세포가 중성구이며, 건강한 정상인들은 혈액 1 마이크로리터(1CC의 1/1000)에 1800개 이상을 갖고 있다. 중성구 수가 500개 미만(중증 중성구감소)으로 감소하면 세균감염의 위험이 정상인보다 몇 배 더 증가한다. 특별히 100개 미만이면 세균감염의 위험이 30배 이상 급격하게 증가한다. 중성구감소 기간에는 여러 가지 양상의 세균감염이 발생하지만, 매우 위중한 감염 형태인 '패혈증(혈액 속에 세균이 존재하는 상태)'이 가장 자주 일어난다. 그렇기에 중성구가 500개 미만에서 고열(체온 38.3℃ 이상 또는 38℃ 이상으로 1시간 넘게 지속)이 발생하면 응급상황으로 취급한다. 암치료를 위해 투여한 항암치료가 중성구감소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항암제를 투여할 때 항상 중성구감소를 걱정한다. 급성백혈병이나 조혈모세포이식이 아닌 일반적인 항암치료 스케줄들에서는 항암제를 투여하고 두 번째 주에 백혈구 수가 며칠 동안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 그리고 만 14일이 되기 전 대부분 정상 수준으로 회복한다. 그래서 이 기간 세균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 세균에 감염되지 않길 바라면서 급성백혈병에 적용하는 적극적인 감염 예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첫째, 철저히 개인위생을 지켜야 한다. 칫솔질 대신 이쑤시개를 사용하거나, 코를 후비거나 귀를 파는 행동은 금지해야 하고, 배변 후에는 좌욕을 하도록 한다. 둘째,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환자를 만지기 전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소독용 알코올 젤을 바르도록 한다. 그리고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해야 한다. 셋째, 끓여서 충분히 소독된 물과 음식을 먹도록 한다. 무서운 병원성 세균들이 묻어 있는 음식(생야채 등)을 그대로 먹으면 이들이 장 속에서 증식해서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킨다. 이상의 조치들은 갓난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을 듯하다. 네 번째, 특정 항생제를 중성구감소가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 시작해 중성구가 회복될 때까지 먹인다. 이는 중성구감소 기간에 장 속 세균들이 감염을 흔히 일으키기 때문에 항생제로 장내 세균 수를 미리 줄여 세균들이 몸속으로 침입할 기회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다. 다섯째, 중성구를 빠르게 자라도록 촉진하는 재조합형 중성구콜로니자극인자(G-CSF) 약을 주사해 중성구감소기간을 단축시키도록 한다. 이러한 예방법들이 일반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함께 힘을 모아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치화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