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게 펼쳐진 제주의 오름. 사람은 자연을 통해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다. 마치 쉬게 되면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을 절심함이 있는 것처럼 달려 간다. 그런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자연도 쉬어야 인간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한때 자연이란 인간에게 자원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은 다른 생물종과는 다른 초월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20세기 당시 만연했던 인간 우월주의가 있었다. 우리가 과거에서 배우는 것은 좋지 않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미래를 예측하자는데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 유명한 생태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1988년 '생물의 다양성'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우리 주변의 많은 생명체를 멸종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멸종의 끝에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그는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방법으로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으며,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전자 다양성과 생물종 다양성 그리고 서식지를 다양하게 유지하는 생태계 다양성 보전을 제시했다. 그의 경고는 세계적인 경각심과 호응을 가져와 1992년 각국 정상들이 브라질에 모여 생물 다양성 협약을 결의하고, 유전자 다양성, 종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을 함께 지키자고 약속했다. 이것이 1992년 UN 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된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이다.'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ESSD)'을 실현하기 위한 27개의 행동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선언의 원칙을 실천하기 위하여 '21세기 지구환경실천강령(Agenda 21)'이 채택되었다. 한마디로 인간행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활동에 있어 자연자원이 공짜라고 말하기도 하겠지만 '자연은 무한하다'는 전제와 '자연은 공짜'라는 생각으로 사람과 기업 그리고 행정마저 자연에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초저가로 자원을 구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는 석유나 석탄같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오름, 곶자왈, 숲, 강, 바다처럼 그곳에 들어가 즐기는 것도 포함된다. 지속가능한 수준만큼만 자원을 이용해야 하는데 회복과 재생이 불가능한 수준의 자연 착취를 통해 자연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는 것도 대부분 요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행정에서는 이런 것이 경제학의 토대이고 이 토대를 기반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결과로 제주자연은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이런 정치는 수치이며 무지이고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용눈이 포함 모두 6곳 휴식년제 실시 이러한 어리석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시행한 것이 있다. 바로 자연휴식년제이다. 제주오름은 역사적으로 소와 말의 방목지 등 삶을 영위하는 곳에서 일제강점기의 진지동굴, 그리고 4·3의 비극적 역사현장이 되었다. 2000년이 되면서 자연환경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스코리아(송이)로 이루어진 오름은 빗물을 걸러내어 청정 제주지하수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각종 생물이 자라는 생태계의 터전이다. 이러한 오름은 무너지기 쉬운 지질구조를 가졌고 한번 무너지면 원래상태로 복원하기 힘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이러한 제주오름의 훼손을 방지하고 오름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 2008년 물찻오름과 도너리, 2015년 절울이(송악산) 정상부에 이어 문석이와 백약이 정상부 그리고 2021년 2월 용눈이를 포함하여 모두 6곳에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연휴식년제는 오염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황폐화할 염려가 많은 국·공립 공원에 사람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복원을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즉, 자연 휴식년제는 환경오염, 황폐화, 등산로 개설 등으로 훼손이 심한 곳, 혹은 보호가 필요한 희귀동식물 서식지 등에 일정기간 사람의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복원, 자연을 되살리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도이다. 제주의 오름. 제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살펴보자. '자연환경보전법','제주특별자치도 자연환경관리조례','제주특별자치도 오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의하여 자연휴식년제(출입제한) 시행을 고시하고 있다. 2020년 12월 '용눈이오름 자연휴식년제 고시'의 목적을 보면 '오름 탐방객 등으로 인한 자연환경이 훼손된 오름에 대하여 식생 복원을 위해 오름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여 오름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이용을 도모하고자 함'이라고 하고 있다. 위반 시에는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내용도 있다. 식생의 이용은 오름 살리고 난 후 차후 문제 목적에 보듯이 제주도는 휴식년제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목적은 오로지 자연을 원래상태로 되살리는 복원에 초점을 둬야 하는데 식생복원과 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모여 사는 특유한 식물의 집단을 만드는 것이 식생복원이다. 그리고 이용이란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쓰거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다. 이 두 가지를 이루려면 오름이 제대로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지금 제주 오름의 휴식년제는 죽어가는 오름을 살리는데 유일한 목적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식생복원과 적당한 이용은 오름을 먼저 살리고 난 차후의 문제다. 황폐화된 오름을 복원하지 않고 식생을 살리는 것은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초본류는 씨앗이 날아와 머물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려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 진 후 착생이 되어야 살 수 있게 된다. 제주오름의 토양층은 대부분 불과 몇cm이며 깊어야 50cm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얇다. 그런데 파괴된 탐방로는 계속적으로 비와 바람에 흙이 유실되어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주지 않는다. 어찌 식생이 복원되겠는가. 식생복원이 오름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이 있는 오름에 복구마대 설치같이 토양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단순한 점착성 토목공법이나 조경공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공사가 오름의 원형을 도리어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훼손된 자연이 복원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숲의 경우에 자연복원은 80~100년 이상이 소요되고, 인공조림의 경우엔 30~4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지 몇 년간 의미 없는 자연휴식년제를 한다고 오름이 살아난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먼저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 오름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2008년에 가장 먼저 시행한 물찻오름은 사려니숲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2021년 현재 14년째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름 복원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무단으로 탐방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주변 곳곳에서 물찻오름으로 갈 수가 있다. 물찻오름 입구에 관리자가 있지만 역부족이다. 혼자서 어떻게 물찻오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서 근처에 있는 말찻오름까지 가는 탐방로가 잘 닦여 있어 이곳으로 드나드는 경우가 많다. 한쪽에서는 차단하려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도너리오름의 무너진 송이층과 무단 탐방객. 훼손된 송악산 정상부와 복구마대 설치. 통제가 되지 않고 있는 문석이오름 입구와 물길이 되고 있는 탐방로 2020년 8월에 백약이 정상부만 자연휴식년제로 묶었다. 정말 이해되지 못할 조치다. 여기는 정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상부분도 심하게 훼손되고 있지만 정작 복구해야 할 곳은 내버려뒀다. 백약이 전체가 문제인 것이다. 대부분의 탐방로는 훼손을 넘어 파괴되고 있다. 한 개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나머지 숲을 태워 거름으로 쓰는 격이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제2의 용눈이 꼴이 될 것이다. 훼손된 백약이오름 정상부와 파괴되는 탐방로. 그리고 2021년 2월부터 용눈이가 2년 동안 심한 훼손을 치유하기 위해 휴식년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년 안에 자연복원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전문가가 누가 있겠는가. 복원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기에 앞서 충분한 복원계획을 먼저 세웠는지 의문이 든다. 통제하고 묶어 놓으면 알아서 잘 되리라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용눈이는 대표적인 오름보전 실패 지역이다. 복원작업이 진행중인 용눈이오름. 6곳의 제주오름 자연휴식년제의 문제점을 종합하면 몇 가지로 집약된다. 탐방객의 의식 문제, 강력한 행정조치 부재, 상시 감시활동체계 미흡, 올바른 복구 방법 부재다. 기본적으로 모든 제도와 규정은 철저하게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보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편의나 탐방객과 관광수익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자연휴식년제 오름을 보전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문제다. 2017년 제정한 '제주도 오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기본계획수립 및 기초조사, 지속가능한 관리방안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자연휴식년제 시행과 이에 따른 규칙 그리고 오름에서의 행동규정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다. 4년이 지나도록 만들어지지 않는 이 규칙을 되도록 빨리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곳에 제주오름의 실질적인 보전에 관한 모든 내용을 넣어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제주의 오름 전경. 각 나라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있다. 생태 보존을 위해 많은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고, 사유지와 거주민도 국립공원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을 정도다. 강력한 예약제도, 특별환경경찰제도를 운영하며 입산시간, 탐방객숫자, 최소의 시설물, 매우 좁은 등산로 이용, 화기금지, 쓰레기처리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통제하고 있다.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제도가 자신과 다음세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적극 협조한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대거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탐방객 폭증과 함께 오름 주변이 각종 토목건설과 관광개발 정책으로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을 개발하고 자연생태계를 괴롭히는 행위를 먼저 하지 말아야 한다. 오름 주변을 보호하는 완충장치를 하지 않으면 제주오름의 자연휴식년제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강력한 조치로 개발을 제한하고 제주자연을 보존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제주오름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또 하나의 자연이다. 따라서 자연휴식년제의 사명은 자연과 문화자원의 보존이지 오름 탐방객에 대한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홍구/제주오름보전연구회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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