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스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의 실무 책임자였다. 여기서 최종 해결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피 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공개 재판을 받고 196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재판을 지켜본 소감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당시 사람들의 머릿 속에 그려진 아이히만의 이미지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공개 재판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사람'이었다. 이어진 정신 감정에서는 그가 자상한 남편이자, 좋은 이웃이요, 성실한 직장인이라는 결과까지 나왔다. 무엇이 이 보통사람을 악마로 바꾼 걸까. 아이히만은 명령을 성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슬 퍼런 독일 나치스 아래서 그 누가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무사고(無思考)가 보통사람을 악마로 만든다고 규정했다. 생각을 멈추고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순간 아이히만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은 죄가 죽을 죄냐는 반박도 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문제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한 사람에게 무슨 죄를 물을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제주4·3 당시 성산읍 주민 200여명을 총살하라는 군 당국의 명령을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 한다"고 거부한 고(故) 문형순 서장은 '경찰 영웅'이 아닌 '반역자'가 돼버린다. 아울러 생각을 멈추게 하는 지도자의 명령 혹은 발언도 주의해야 한다. "일본 신민으로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없는 인생경로를 살았던 많은 사람이 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던 것이 죄는 아니다"라는 원희룡 지사의 지난 광복절 발언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송은범 행정사회부 차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