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그 사람의 역사, 사상과 가치관 등이 어우러진 인품의 총체다. 김춘수의 시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시인은 '꽃'이라는 사물을 상대적 대응체로 대상화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이름도 기왕이면 '꽃'이라 불리었을 때 존재의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글 이름도 있지만 아직도 의미의 깊이를 더하는 한자 이름이 선호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자식 이름은 통일신라 무렵에 시작됐다고 한다. 1909년 민적부(民籍簿) 작성 시 전체 인구 중에 성(姓)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하층민이나 양반가의 여성조차도 대부분 아명(兒名) 이외에 정식 이름을 갖지 못했다. 지금처럼 이름 문화가 보편화된 것은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큼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名) 외에 자(字)와 호(號)를 가졌고, 또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은 생전에 임금이 내린 봉호(封號)나 사후에 내린 시호(諡號)도 가지게 됐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귀히 여기는 관습이 있어, 오늘날에도 당사자의 앞에서는 그 실명(實名: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고 있다. 이렇듯 이름은 불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져 상호 간의 관계, 신분, 명망, 학덕 등에 맞추어 다양한 호칭을 사용했다. 화자(話者)가 자신을 호칭할 때, 상대방이 윗사람인 경우 자신의 이름(名) 그대로 사용했고, 동년배나 그 아랫사람에게는 자(字)를 썼다. 타인을 부를 때도 자(字)를 불렀지만 손아랫사람인 경우, 특히 어버이나 스승이 그 아들이나 제자를 부를 때에는, 이름(名)을 사용했다.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문인, 예술인, 은자(隱者) 등에게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호(號) 사용이 확대돼 관료나 경제인, 지식인 등의 호칭에도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호는 벗이나 지인들이 붙여주기도 하고 스스로 짓기도 했다. 호를 짓는데도 특별한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나 가치 등을 담기도 하고, 고향이나 사는 곳의 지명(地名)·산수(山水), 당(堂)·정자(亭子)·서재(書齋) 등의 이름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호를 갖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추사(秋史), 완당(阮堂), 예당(禮堂), 노과(老果) 등 수 백 개의 호를 사용했다고 알려진 김정희다. 부모나 존장(尊丈) 등을 제외한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나 동년배 사이에는 자(字)를 사용했지만,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이나 스승, 존경하는 사람 등을 지칭할 때는 호(號)를 사용했다. 간혹 손윗사람이나 스승과 대화할 때 호를 놔두고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여 부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만약 호를 모른다면 그냥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예도다. 이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무례를 범치 말기로 하자.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컬럼니스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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