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작가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절했던 장 폴 사르트르.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페미니즘의 고전적 텍스트 '제2의 성'을 남긴 시몬 드 보부아르. 1929년 고등사범학교에서 서로 알게 된 뒤 둘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졸업 후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학교로 발령을 받아 헤어졌다.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청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부아르는 결혼도 아이도 거부한 채 부부로 살기를 원했고 두 사람은 '계약 결혼'이라는 독특한 관계를 고안해냈다. '작별의 의식'은 사르트르 생애 75년 중 마지막 10년을 보부아르가 연도별로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82년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으나 당시 검열 탓인지 삭제된 부분이 있었고 고유명사들이 불분명했다. 소설가 함정임의 번역으로 누락된 대목을 채우고 두 사람의 행적을 보완해 39년 만에 우리말로 재출간됐다.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띄우는 이 글에서 보부아르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지속해온 일기에 바탕해 사르트르와 공유한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평생 경어체로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묻고 의견을 나눴던 두 사람이 오랜 시간 공유했던 세계가 집약되어 있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강조했던 사르트르가 명사들과 교류하고 정치적, 사상적으로 많은 이들과 관계 맺고 영향을 주고 받는 모습은 우리가 예상했던 20세기 최고 지성인의 얼굴이다. 그 한편에 몸이 약해지고 시력을 잃어가며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르트르가 있다. 그럼에도 보부아르의 눈에 비친 사르트르는 다음 세대가 꾸려나갈 더 나은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어느 날 기력이 쇠해진 사르트르가 아주 천천히, 긴 산책을 하면서 보부아르에게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보부아르는 그렇지 않다고 진심으로 답한다. "그가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기뻤다." 현암사. 1만6000원. 진선희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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