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들이 모여 시문 짓고 학문 닦던 곳 ‘관창대’ 잃어버린 소 찾고자 기도 올리던 쉐당 ‘자운당’ 신풍리 옛 이름 딴 ‘웃내끼 산신당’은 마을 명소 “아름다운 벚꽃길 가꿔 다양한 콘텐츠 만들 것” 무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폭서의 한복판을 뚫고 멀리 신풍리를 향했다. 네비게이터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사이 어느덧 성읍민속마을을 거쳐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켠 뒤 커브를 틀고는 자못 놀랐다. 도로 양옆으로 웃자란 나무들이 아치를 그리며 터널처럼 길게 늘어선 것이 아닌가. 때마침 소나기까지 내리며 나무 그늘과 합작해 더위를 식혀주니 금상첨화다. 천천히 달리며 과연 어떤 나무들인가 살폈다. 갓길을 신록으로 물들인 주인공은 벚나무였다. 길게 뻗은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남산봉로의 환상은 마을회관에 다다를 때까지 더위와의 극적인 이별을 맛보게 해줬다. 관창대. 사진=한진오(극작가) 관창대는 이 마을의 오랜 전통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유서 깊은 명소로 신풍리의 깊은 내력은 물론 묵향이 넘치는 유림의 고장을 증명하는 곳이다. 조선 시대 삼현 체제로 행정편제를 유지할 당시 신풍리와 가까운 성읍리 소재 정의현에서는 성산 일대의 여섯 마을을 좌유면(左儒面)과 우유면(右儒面)으로 나눠 유학을 장려했다. 좌유면에는 오조리, 고성리, 수산리가 속했고, 우유면에는 신풍리, 삼달리, 난산리가 포함됐다. 관창대는 바로 우유면의 세 마을 유림들이 한 데 모여 시문을 짓고 세상사를 공론하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천미천 자락의 커다란 팽나무 그늘 밑에 둘러앉은 옛사람들을 상상하면 묵향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느낌이 든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관창대에 번듯한 정자를 짓고 시비(詩碑)까지 세워놓아 운치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천미천의 풍광을 빌려 선비의 면학을 읊어낸 의청선생묵적시비(毅淸先生墨蹟詩碑)는 신풍리 출신의 저명한 유학자 오문복 선생의 조부가 남긴 시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자운당 신풍리 본향 웃내끼 산신당 혼롓날 풍성한 잔치마당을 떠올리며 풍천초등학교의 옛터 너머 작은 숲으로 들어서면 던데못이라는 연못가에 우뚝 선 비석과 맞닥뜨린다. '도운대(道韻臺)'라고 쓰인 커다란 비석 옆에는 시비(詩碑) 하나가 나란히 서 있다. 구한말 만고의 충신이며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진 면암 최익현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제주 유배를 마치고 떠날 채비에 하던 최익현이 신풍리를 지나던 길에 유학의 도를 담은 과신풍촌(過新豊村)이란 제목의 시를 남긴 것을 만대에 전하려고 세운 것이다. 도운대 너머 작은 숲속에 제주 특유의 돌집으로 지어진 본향당의 상서로운 기운은 유교와 무속의 묘한 앙상블을 자아낸다. 지금은 신앙이 많이 쇠락해 찾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신성한 기운은 사위지 않은 채 숲 전체를 신비롭게 감싸고 돈다. 강인식 이장 도운대 글·사진=한진오(극작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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