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한독잇개’라 이름 불리며 설촌 360년 역사 자랑 골목마다 빼곡한 팽나무 장관… 선인장 군락도 한몫 ‘제주어마을’ 사업 안착 성공 1년 살기 프로그램 구상 금등리 마을버스·야간 조명 등 마을 만들기 사업 박차 주민 누구나 대소사 능동적 참여… 함께하는 문화 정착 제주도 북서부의 해안마을 한경면 금등리, 이 마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토박이들 중에서 드물다는 이장님의 우스개가 사실인지 재확인하는 것으로 금등리의 리포트를 시작한다. 팔순에 접어든 내 부모님께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금능리? 알주게.' 금등리라고 재차 말하자 그게 어디냐며 되묻는다. 이장님의 코멘트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금등은 그렇게 비밀 속에 숨어있는 보물상자 같은 마을이다. 금등리 해변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와 비양도 마을 안의 팽나무들 금등리는 일주도로를 중심으로 북서쪽의 화동과 남동쪽의 수장동 두 동네로 이루어진 기다란 지형을 지닌 마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개 또는 한독잇개로 불리다가 대략 1990여 년 금등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여느 어촌마을처럼 해안에는 갯바위와 용천수가 어울린 조간대가 발달해 있어서 손두물원, 개창원 등의 원담이 있지만 생업과 자연환경이 변화하면서 근래에는 쓰임새를 잃고 본연의 모습도 더러 손상됐다. 전통사회에서 마을공동체의 신앙적 뿌리였던 본향당 손두물당도 잡초가 무성해 더는 기원의 마음으로 찾아드는 주민들이 발길을 끊었다는 짐작을 일게 만든다. 금등리 용천수 손두물 금등리 본향 손두물당 금등리 해녀의 집 금등리사무소 이처럼 풍성한 마을 콘텐츠로 다른 마을들의 부러움을 사는 배경에는 온 마을 사람들의 너나없는 노력이 가장 동력이다. 이 동력의 배후에는 무려 13년째 마을을 이끄는 고춘희 이장님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내가 탐방차 리사무소를 찾아갔을 때에도 제주도 마을 만들기 종합지원센터에 온 분들과 열띤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열정적인 토론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다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춘희 이장 "마을회의를 해도 개발위원뿐만 아니라 부녀회원들까지 참가하게 했고 누구나 마을의 대소사에 대한 발언을 자유롭게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발언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을사업에 능동적으로 임하는 모습으로 변신시키려니 애도 많이 썼다. 우리 마을은 면적도 작고 상주하는 인구도 2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중 이주민이 100명이다. 다른 마을에서 벌어지는 선주민과 이주민과의 갈등을 보며 우리 마을은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각도로 함께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예를 들면 해녀회에 이주민과 선주민 구별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해녀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젊은 이주민들은 물론 해남도 두 명이나 생겨났다. 최근에는 해녀들과 합심해 마을 공동어장에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금등리를 찾게 만들 계획 중이다." 13년 차 이장의 헌신적인 모습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마치고 헤어진 뒤 마을 안길을 샅샅이 살피며 누비는 사이 웃자란 팽나무들을 만나며 고춘희 이장을 떠올렸다. "우리 마을은 팽나무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화동에서 수장동까지 길게 이어지는 팽나무 탐방로를 만들까 합니다." 바람의 결을 따라 꿈틀대며 자라난 해묵은 팽나무들의 옹이 진 이력을 보노라니 고춘희 이장이야말로 저 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글·사진=한진오(극작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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