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덕 작가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대사의 비극을 그림책에 풀어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그린 '꽃할머니', 제주4·3 사건을 다룬 '나무 도장', 5·18 민주화운동을 담은 '씩스틴'을 출간했다. 이번에는 베트남전쟁에 얽힌 사연이 있는 '용맹호'를 내놓았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꽃할머니가 겪은 아픔은 베트남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콩고에서도 이라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2010년에 선보인 '꽃할머니'의 마지막 글귀에서 짐작하듯, 권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이 작품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용맹호'에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복합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용맹호씨는 파월장병으로 불리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정비소로 출근해 하루 종일 자동차를 수리하고 땀으로 범벅이 된 정비복을 벗고 퇴근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용맹호씨의 곁에는 베트남의 환영이 따라다닌다. 검정 옷 입은 엄마의 품에 안겨 작은 손을 휘젓는 아기와 눈이 마주치자 용맹호씨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새로 돋아난 귀에서는 총소리가 울린다. 그럴 때마다 용맹호씨는 스패너를 내려놓고 숨을 크게 쉰다. 베트남 농가의 아침 밥상 자리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그날엔 가해자인 용맹호씨가 있다. 한국 정부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파병한 한국군 규모는 32만여 명이다. 작가는 그림책 말미에 전쟁 트라우마로 결국 거리에서 쓰러지는 용맹호씨와 꽃다발을 목에 걸고 있는 파병 기념사진 속 그의 모습을 연달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쟁 속 폭력이 개인을 넘어선 국가의 문제임을 말한다. 사계절. 1만7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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