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와 어우러진 큰녹고메 모습. 이상국기자 서부지역 한눈에 들어오는 큰바리메 정상 오를만 제 색깔 잃어가는 으름난초와 단풍제비꽃도 반겨 불현듯 현실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다. 그동안 마음의 눈을 가리고 회피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감당하지 못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숲에서 부지런히 잎을 떨구고 찬바람 앞에 서있는 나목(裸木)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비록 지금은 잎이 모두 저버린 나무처럼 초라하게 현실이라는 벌판에 서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잎사귀를 떨궈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의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 것이다. 떨어진 잎은 뿌리의 거름이 되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새잎이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최근 기온이 뚝 떨어진데다 이날은 비까지 예보되면서 참가자 대부분은 옷을 제법 껴입은 상태로 산행에 나섰다. 먼저 큰녹고메를 4분의 1 정도 오르다 어음천으로 향하는 조릿대 밭으로 들어간다. 물을 머금은 조릿대에 바지가 스치면서 무릎 아래가 벌써 젖었다. 손도 상당히 시려워 겨울이 가까워졌음을 체감했다. 10여분 정도 걷다보니 발 밑에 어음천이 보인다. 비가 내려 내리막이 상당히 미끄러웠지만 뿌리가 단단한 조릿대를 안전 장치 삼아 무난하게 어음천에 도달했다. 단풍제비꽃 서북쪽 방향으로 어음천을 벗어나니 이번엔 잔디밭이 나왔다. 다른 잔디보다 유난히 붕 떠있어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길에는 보라색 열매가 맺힌 새비나무와 지난달까지 원색적인 빨강을 뽐냈지만, 이제는 갈색빛으로 변한 으름난초가 참가자들을 반겼다. 새비나무 열매 하산 과정에서 느닷없이 우박이 떨어지면서 참가자들은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하산 후 곧바로 큰바리메로 향했는데, 야자수 매트와 계단이 잘 조성돼 등산로가 가팔라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으름난초 줄사철 하산 후에는 둘레길과 고사리밭, 상잣길 등 평탄한 길로, 큰바리메 정상에서 봤던 경치를 반추하며 걸을 수 있었다. 모든 코스를 완주하고 보니 시작할 때 단단히 여몄던 참가자들의 옷차림이 단출해져 있었다.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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