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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김지연 시집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슬픔의 맛 뿌리로 삼는 식물들처럼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1. 11.26. 00:00:00

필명이 아닌 본명으로 10년 만에 새 시집을 낸 김지연 시인.

필명 아닌 본명으로 시집
따스하고 촉촉한 이야기

첫눈 보듯 마주하는 '나'

첫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 두 번째 시집 '열꽃 공희'를 낼 때 그의 이름은 김규린이었다. 그가 이번엔 필명이 아닌 본명을 썼다.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라는 제주 김지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고 앞서 두 권의 창작집을 통해 상처와 열망을 풀어냈다. 10년 만에 출간된 이번 시집에서는 "뒷줄에 서 있는 자신을 불편해" 했을지 모르는 어느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며 "첫눈처럼" 걷는 마음으로 그린 "따뜻하고도 조금은 촉촉한 이야기"를 나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는", "내가"라는 시어가 적지 않게 보인다. 그 여정에 어린 날, 스무 살, 마흔 등을 지나온 풍경이 있다. "여태 그려온 그림에는/ 왜 내가 들어있지 않을까요/ 아쉽게 작별한 것들만 저리/ 발 동동 구르고 있을까요/ 무모했던 날 대체/ 어찌해야/ 용서할 수 있나요"('점묘체의 자화상')라는 물음은 "제거했던 뿌리가 불쑥 되살아나/ 달구어진 집게로 쓰라리게 캄캄한 불구멍을 들쑤시는 그런 날// 나는 조심스레 피어오르는 연기를/ 아무 생각 없이 믿기로 했다"('어떤 화엄')는 답으로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계산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로 시작되는 '자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면/ 맨 먼저 폭풍우 맞으리라"거나 "날아오르는 바람꽃 한 자락 떠먹은 뒤/ 나를 흡수하는 자궁을 똑바로 응시하리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시집 말미 '장면들'이란 제목으로 덧붙인 산문에서 시인은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연상되는 "슬픔의 맛"을 말하며 그것을 탐닉하고 땅 속 깊이 뿌리박고 번져가는 식물의 위대함을 말한다. 시인이 "비뚤비뚤 흘려 적은 것일지라도/ 가지에 받쳐진 목숨은 모두 빛나는 거라고"('먼나무 열매') 했듯 긴 생을 통과하며 많고 많은 눈물을 흘리고 사는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애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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