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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제주도립무용단 쉰네 번째 정기공연 '녹담'
설화를 꿈꾸게 만드는 고단한 현실 속 느슨한 서사 아쉬움
섬 태초 형상화 캐릭터 독무·주체적 노동 물질 춤 인상적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1. 12.01. 16:50:17

제주도립무용단 정기공연 '녹담'. 해녀 춤을 넘어 물질하는 춤으로 고단한 현실 속 삶의 무늬를 주체적으로 그려가는 여성들을 그렸다. 사진=도립무용단 제공

제주설화의 상상력은 결국 우리의 현실에 닿았다. 설화가 그저 옛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염원을 반영한 거라고 했을 때, 그 여정은 예견된 거였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100분(휴식 시간 제외)간 이어진 제주도립무용단의 쉰네 번째 정기공연 '녹담'이다.

3년여 도립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김혜림 예술감독 겸 안무자가 안무·연출해 초연한 이 작품은 김 안무자의 제주살이 햇수가 녹아들며 제주 섬의 문화적 요소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투영됐다. 무속굿에서 해녀 문화까지 인상적 장면을 빚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한라산과 백록담 설화에 뿌리를 둔 공연은 그것이 과거가 아닌 오늘과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듯 '꿈지기'(고범성)를 등장시켜 그의 꿈속으로 관람자를 이끌었다. 돌을 든 태초의 인간(임승환), 백록(윤미영), 포수(김기승), 뿔(유현상), 선녀(김민정), 풍신(한명정), 불숨(한점순), 흑룡(정승욱), 해혼(현혜연), 풍혈(강진형) 등 섬의 태초를 형상화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독무로 옴니버스 형식의 공연에서 분절된 장면을 이으며 화산섬이 낳은 자연과 문화를 환기시켰다.

영상을 활용해 하늘이 열리는 장면으로 시작된 공연은 볼거리를 줬다. 붉거나 검고, 하얗고 노오란 색감들이 무대를 채웠고 부푼 천 안에 거꾸로 매달린 나무, 달처럼 사람의 얼굴처럼 공중에 떠있는 설치물은 시공간의 특이성을 만들어냈다.

'녹담'의 피날레로 향하는 장면. 사람들이 만든 우리 안의 신들이 인간의 꿈과 만나 비로소 숨을 쉰다. 사진=도립무용단 제공

반면 서사의 흐름은 매끄럽지 못했다. 1막의 끝에 물질하는 춤으로 고단한 나날 속 하얀 천에 삶의 무늬를 주체적으로 그려가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허벅 진 여성들의 노동을 담아낸 뒤 다시 에필로그에서 이명복 작가의 '삼촌의 초상' 인물화를 영상으로 띄워 "이 땅의 어머니들이 모두 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왜 우리는 설화를 꿈꿀 수밖에 없는가"를 물으며 더러 난해하지만 상징성이 담긴 몸짓으로 분투하는 현실을 다뤘던 무대가 느닷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히려 개벽이자 욕망이자 연대의 도구로 표현된 돌의 이미지를 확장했으면 어땠을까. 생명을 품은 바람처럼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바닥에 깔고 연출하기 위해 필요했던 2막은 그래서 늘어진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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