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5일 제주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조병옥 경무부장(뒷줄 오른쪽 경찰제복). 사진=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제주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제주4·3 당시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재판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이들에 대한 '특별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하지만 미군정이 내린 판결을 법원이 판단할 수 있을지, 재심 청구권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등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부는 고민에 빠진 상황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947년 4월부터 1950년 4월 사이 일반재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32명의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첫 심문기일을 1일 진행했다. 32명은 1947년 3·1사건과 1948년 제주4·3 과정에서 군·경에 체포, 미군정의 '포고 2호·법령 19호' 혹은 이승만 정부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일반재판에 넘겨져 옥살이를 하거나 벌금형을 선고 받은 이들이다. 32명 중 생존자는 고태명(89)씨가 유일하고, 나머지 재심 대상자는 유족이 대신 참가했다. 1일 제주지법 앞에서 이번 재심 청구를 이끌고 있는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가 이날 심문기일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송은범기자 1945년 9월 7일 당시 미국 육군대장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명의로 된 포고 2호에는 '보안을 해친 자,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등은 점령군(미군)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사형 또는 엄벌에 처한다'고 명시했는데, 미군정은 이를 근거로 제주도민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장 부장판사는 "미국 군사법정에서 판결한 사안을 대한민국 법원이 할 수 있는지 고민"이라고 말했고, 변호인 측은 "4·3특별법에는 재심 청구를 제주지법으로 하게 돼 있다. 미군정이 내린 판결이라도 (모든 사건이) 4·3의 시발점인 1947년 3월 1일 이후 일어났기 때문에 제주지법에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구권자 범위 문제는 32명 가운데 자녀나 배우자가 아닌 조카가 재심을 신청한 경우가 발생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4·3특별법이 개정돼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재심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검찰에서는 "(무분별하게 청구권을 인정하면) 희생자와 아예 상관없는 인물이 재심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보였다. 장 부장판사는 "개인적으로 법원 인사가 이뤄지는 내년 2월 전에 재심 개시 여부, 나아가 본안재판도 마치고 싶은 마음"이라며 "새로운 재판부가 오면 4·3에 대해 다시 공부를 해야하고, 그만큼 재판 일정이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심문기일은 오는 15일 오후 2시에 개최, 재심 청구자들에게 체포 경위와 구금일수 등을 묻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