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것은 1984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독재정권을 향해 쉼 없이 저항하던 미술에 붙여진 명예로운 이름이다." 40년 가까운 세월 민중미술가로서 지나온 삶을 회고하면서 그는 이런 문장으로 '닫는 글'의 일부를 채웠다. '민중미술과 함께한 40년'이란 부제를 붙인 김정헌의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30년 동안 공주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던 저자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발전을 주도한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고 민족미술협의회 대표, 전국민족미술인연합 공동의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최근엔 소장 작품들을 전국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에는 '현실과 발언'의 탄생, 민족미술협의회의 결성과 민중미술론, 민미협과 그림마당 민, 광주비엔날레 등 대형 전시회들,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이야기 등이 들었다. 알고 보면 민중미술의 맥락과 그 연원은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다는 저자의 시선은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의 흐름에서 오늘날 민중미술의 미래까지 닿는다. 그는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민중미술의 활력이 급격히 수그러든 점을 짚으며 정치·사회·문화적 환경 변화가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중미술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그대로 남는다고 했다. "지금 이곳의 미술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돌아보면 예술 분야에 한정하지 않은 정치·사회와의 횡적인 연대가 민중미술을 지켜내고 키워온 것이라는 그는 "미술인으로서 저항정신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창비. 2만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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