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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숙의 한라시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 것인가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2. 01.27. 00:00:00
대학시절 좋아했던 외국 여배우 리스트 중 톱(Top)은 단연코 잉그리드 버그만이었다. 흑백영화인 카사블랑카에서 그녀를 처음 접했고,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종은 낭만적인 여운을 갖지만 사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교회의 조종(弔鍾)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저 종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가' 가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도 한다.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한 전망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단간 혐오를 목도하면서, 두 달 후 있을 정치적 변화를 앞두고 난무하는 네거티브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영화 제목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개발도상국의 모범사례로 거론되고, G7국가에서 G5국가로 도약이 점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자와 같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발언이나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증가하는 현상은 모범사례 국가라는 찬사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심각한 출생율 저하에도 노키즈존이 늘고 있고, 아동학대 신고는 3만건이 넘고 있다. 경제성장의 일익을 담당한 노인층에 대한 학대나 빈곤율도 높아지고 있으며,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성착취물, 혐오적 언사는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상에서 무한히 유통되는 중이다. OECD국가중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는 이런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적 감정이나 편견은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기도 하지만 경제적 빈곤과 사회에 대한 불신과 결합돼 증폭되곤 한다. 전쟁시, 경제불황시, 또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 등 외부의 위협이 증가할 때 특정 집단을 사회적,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돼왔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위협과 조롱은 그 집단에게만 조종(弔鍾)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공격하는 집단에게도 동일한 종을 울리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구성원 모두가 사실상 연결돼 있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뒤집어본다면 장애나 아동, 여성 등 그동안의 소수자에 대한 우호적 정책의 결실은 비장애인이나 성인, 남성들에게도 확산된다는 점에서 상호간 얼마든지 기쁨의 종이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비장애인이나 아동, 노인들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고, 차별적으로 적용되던 각종 가족휴가제도가 남녀 공히 사용될 수 있게 되고, 여성에게는 일하는 기쁨을, 남성에게는 육아의 보람를 알게 한 제도적 발전도 상호간 즐거운 종을 울리게 한 결과이다.

이제 대한(大寒)이 지나고 절기의 최초 시작점이며 새해를 상징하는 입춘이 다가오고 있다. 입춘을 계기로 사람들은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하고, 지난 시간의 일들은 거두고, 차가운 땅 속에서 머리를 삐죽이 내밀 새싹 같은 희망을 기대한다. 임인년 올 해 서로에 대한 포옹과 평안의 종소리를 울릴 것을 염원한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해 울리게 하는 것이므로.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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