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성역할 요구받아 모욕적 고용 환경 순응 태도 "오전에는 너무 바빠서 화장실도 못 가요." "이 콜센터는 햇빛이 없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려요. 콜만 열심히 받으면 되지 창밖을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당신이 오늘 한 번쯤 통화했을 그들, 콜센터 상담사들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의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지난 10년간 현장 연구와 심층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엮은 '콜센터의 인류학'을 담고 있다. 악성 고객의 갑질 논란과 상담사의 감정 노동에 집중됐던 논의를 넘어 콜센터 산업 자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다루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여성 노동과 인권의 문제에 닿아있음을 살폈다. 저자는 50여 년 전 서울 구로공단 '공순이'로 불렸던 여공들이 있던 자리에 오늘날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여공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담사들의 처우는 코로나19로 관련 업무가 급증하는 중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상담사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은 돌봄 등 전통적인 성역할을 요구받는 현실을 보여준다. 콜센터 산업이 확산하면서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가사노동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취직을 했지만, 그 안에서의 노동도 결과적으로 집에서 아내로, 딸로 위치 지어졌던 낮은 지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먼저 설정한 후 여성 상담사에게 그것을 모방하라고 지시하고 관찰하면서 순종적 여성상을 구현하도록 지속적으로 강요받는다. 이번 연구에서 저자는 상담사의 감정노동 대신에 정동노동이란 용어를 썼다. 여러 상담사들이 감정의 조절뿐만 아니라 각종 모욕적인 고용 환경에도 순응하며 길들여진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불판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굳어버린 몸들"이지만 이를 극복하려 상담사들은 노동조합 활동과 몸펴기생활운동을 벌이고 있다. 당장 헤드셋이 자유의 횃불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희망을 꿈꾼다. 창비. 2만원. 진선희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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