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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영균의 '한라산에 기대어'
모든 날들이 좋은 한라산 계절일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2. 02.18. 00:00:00
꽃잎 떨어진 자리 다시 꽃
신산했던 삶 다독이는 자연

가슴 뛰는 감정 담아 쓴 시


이영균 시집 '한라산에 기대어'에 실린 풍경 사진.

시집 끄트머리에 놓인 '내 삶의 궤적-고희에 들다'를 먼저 폈다. 거기엔 그가 왜 지금 한라산에 깃들었는지에 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시는 굶주린 배 움켜쥐고 굴렁쇠 굴리며 혼자만의 분노를 삭인 채 무작정 달렸던 부산 태생 어린 사내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가난에 대한 분노와 설움이 컸던 청소년기를 지나 그는 유신독재의 서막이 오르고 최루탄 냄새에 찌들었던 대학에서 청춘을 보냈다. 장년이 된 청년은 산업현장에서 10년을 불살랐고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전자소재 업체를 세운다. 회사는 날로 성장했고 모험과 도전, 극복에 대한 응답인 듯 그는 문명사회에서 부자가 되었다. 지금은 혼란과 갈등의 지난 시간을 훌훌 털고 자연 안에서 또 다른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영균의 '한라산에 기대어'는 그 같은 여정을 풀어낸 책이다. 10여 년 한라산 기슭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2020년 5월부터 1년 동안 "시든 꽃잎 떨어진 자리에 여린 꽃봉오리 터져 가슴 뛰고 흥에 겨울 때 감정이 생각에 앞서 몇 구절씩 적었다"는 글들이 130편이 넘는 시가 되었다. 이 나라의 압축된 현대사가 녹아있는 지난 생을 다 담으려면 시집 한 권으로도 모자랄 테지만 그는 꽃들 피고 지며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위로 받는 나날을 시로 전한다.

표제가 말해주듯 그가 자연에서 얻는 건 감사의 마음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어떤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처럼, 그에겐 "나무 돌 바람 구름과 동무해서 어울릴 수 있는 길"에서 마주하는 한라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저마다 눈부시다. "숲속 붉은 지붕 위에/ 하얀 눈 소복이 쌓여갈 때/ 땅속에 생명들/ 봄을 위한 연노란 힘 쌓아간다"('한라산 계절일기') 등 자연은 도도한 희망을 보여준다. 시편 군데군데 늦둥이 아들이 '폰카'로 찍은 제주 풍경 사진이 더해졌다. 도서출판각.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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