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재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게 아니라 피해를 입은 만큼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겁니다." 제주4·3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돼 유족들이 "고맙다"는 말을 하자 재판부가 한 말이다. 제주지방법원 제4-2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4일 군법회의(군사재판)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160명의 군사재판 수형인이 억울함을 푼 것이다. 이날 무죄를 선고 받은 30명은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영문도 모른 채 군·경에 끌려가 육지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한 이들이다. 앞선 재판과 마찬가지로 이날 재판을 받은 30명도 모두 행방불명 혹은 사망해 유족이 대신 법정에 참석했다. 이날 국선변호인을 맡은 문성윤 변호사는 "피고인들은 4·3 당시 학생이나 농업, 상업, 공무원 등 평범한 양민이었다. 하지만 군·경은 영장도 없이 이들을 끌고가 옥살이를 시켰고, 대부분 형무소에서 총살 등으로 사망했다. 가까스로 생존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도 고문 후유증으로 얼마 못가 사망했다"며 "특히 피고인 중 김춘배씨는 군사재판으로 징역 20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 한국전쟁 발발로 풀려났다. 하지만 5·16 군사쿠테타로 재수감됐고, 김씨의 처가 '형집행정지 신청'까지 감행해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걷지도 못하고, 시력도 상실돼 고생만 하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설명했다. 장 부장판사가 "이번 사건은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결정하자 유족들은 재판부와 검찰을 향해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이에 장 부장판사는 "4·3 당시 희생자만 피해를 입었겠나. 살아 남은 사람은 죽는 게 나았을 삶을 살았다"며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국가가 너무 늦게 피해 회복에 나서서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 부장판사가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에게 소회를 묻자 그는 잠시 울먹인 뒤 "평화재단에서 추가진상조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 행방불명인 피해조사도 포함돼 있다. 모든 힘을 다해 조사에 임하겠다"며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법정에 임하는 판사와 검사의 자세에 대해서만은 고맙다고 하고 싶다. 법리적으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닌 4·3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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