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늘 후회는 늦게 따라온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말을 했기 때문에 후련한 속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가슴속에서 끓어 올라 입 밖으로 터져야 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때가 오고 말로 꿈틀거리기 마련이다. 설혹 그것이 미련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대처였다고 해도 그 직설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정직하기 위한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는 그런 영화다. 어떤 마음 하나를, 어떤 순간 하나를 반드시 전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만들어낸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전에 만든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그의 시그니처와도 같았던 작품들이 가지고 있던 따뜻하지만 서늘했던 특유의 서정성을 전복시키는 '브로커'는 직접적으로 터져 나온 목소리를 목도하게 만드는 거칠고 투박한 영화다. '브로커'는 예측되는 결과들을 무릅쓰고 길 위를 달린다. 거의 뒤도 돌아보지 않는 질주다.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수많은 타인들이 만나는 것이 목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가까운 인간관계 안의 깊은 골짜기들을 더듬던 감독은 전과는 다른 방향과 방식을 택했고 그 선택 다음에는 종종 길을 잃고 누군가를 붙잡는다. 감독의 전작들이 전해주던 깊고 아득한 감정들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브로커'의 이 투박한 방향 전환에 당황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던 그들의 여정이 끝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뭉쳐진 마음을 건네받은 느낌이었다. '이 말을 하고 싶었구나. 이 말을 들어주길 원했구나'라는 심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그가 영화를 통해 만나게 했던 사람들, 해야 했던 말들을 곱씹었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와 아기를 버린 미혼모 그리고 그 아기를 팔아넘기려는 브로커들과 이들을 쫓는 두 명의 형사의 이야기'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는 '브로커'는 장르물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을 데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스타일의 접선을 시도하는 영화다. '브로커'를 보기 전 추적극을 기대한 이들은 긴박감이 떨어지는 영화의 속도에 지루할 수 있고 감독의 인장이 새겨진 캐릭터들의 개성과 관계성을 기대한 이들은 다소 방만하게 늘어나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탑승이 부대낄 수도 있다. '브로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거장의 영화로써 약점이 분명하다는 것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명확해지는데 두 시간의 러닝 타임이 길면서도 짧게 느껴진다는 점 또한 이 여정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눈으로만 말하던 이가 갑자기 입을 떼었을 때처럼 나는 그의 말에 당황한 채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포맷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물론 그의 팬덤들에게도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브로커'가 언젠가는 왜 이 작품을 이 시기에 반드시 꺼내 놓아야 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전언을 너무 빨리 외면하는 일 또한 후회를 부를 걸 알기에 나는 이 영화를 흘려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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