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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25시
[송은범의 편집국 25시] 절벽으로 떨어진 모자(母子)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입력 : 2022. 06.30. 00:00:00
"지금도 그런 가정에서는 가족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밥을 떠먹이고, 욕창을 막으려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이 일상처럼 반복됩니다. 또 일부는 '죽어서라도 모든 걸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책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에 나온 글이다.

최근 제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80대 모친과 함께 11m 해안 절벽 아래로 추락한 김모(48)씨 사건이다. 김씨는 현재 구속 기소돼 다음 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김씨 내외는 15년 이상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부부는 직장에 나가고, 어머니는 밭일에 나가는 등 각자의 삶을 영위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씨가 건설 대금을 받지 못해 빚쟁이가 됐고, 어머니마저 치매 증상을 보인 것이다.

김씨의 부인은 "불 위에 올려둔 냄비를 태우는 일이 잦았고, 나중엔 대소변까지 가리지 못했다. 남편에게 사는 게 지옥 같다고,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원망하기도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결국 김씨는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범행 직전 어머니에게 "가게마씸(가시죠)"이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씨의 손을 잡고 "가자"고 했단다.

김씨의 범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 전쟁에서 우리 사회가 우군이 돼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송은범 행정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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