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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5)안덕면 덕수리
전통문화 자긍심과 결속력 최강 마을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2. 07.01. 00:00:00
산방산 북쪽 지역 일대를 400여 년 전부터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이룩한 마을. 18세기 고문서에는 '쇄당(刷堂)'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나 출향인사들은 덕수리라는 이름과 함께 '새당'이라고 마을 명칭을 부르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금물로리라는 거대한 마을에서 사계리와 나눠지면서 덕수리가 된 것이다. 마을 전체에서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산방산의 정기가 흐르는 느낌을 받는 듯 기품이 넘치는 곳이다.

마을 한 곳에 무형문화재 두 개를 보유한 곳은 지극히 드물다.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문화재 제9호 방앗돌굴리는 소리와 7호 불미공예가 그것이다. 개인의 기능을 넘어선 마을공동체의 협동정신이 배경이 되는 문화유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것이다. 덕수리라는 마을을 이해하기 위해 방앗돌과 불미라고 하는 물상을 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노동의 방식이 한 사람에 의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여럿이 모여들어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일이기에 항시적인 운영체계가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더욱 극명하게 마을공동체정신을 보여주는 입증근거가 있다. 360년 가까운 세월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을 포제를 지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4·3으로 마을주민들이 불안에 떨던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온 마을포제. 그런 마을이 이 섬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랴.

덕수리가 제주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마을 주민들이 노력하고 실천적 과제와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은 과연 이 마을 한 곳의 이익만을 위한 일인가 자주 묻게 된다. 경관 중심의 관광패러다임에서 전통문화적인 요소와 균형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행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충분하게 이뤄져야 함에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이며 안타까움이다. 성과에 대한 파급력이 제주관광이라는 경제 요인에 광범위하게 도달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면 도민 이익의 관점에서 특수한 지원체계가 필요한 마을인 것이다. 공익을 위한 지속적 투자를 위해 행정의 역할이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마을 만들기와 관련한 수많은 사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지만 덕수리가 전통문화자원에 대한 특수성에 입각한 지원이 아니라 여타 마을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하는 개탄스런 현실이다. 한계를 극복해야 할 행정이 한계의 굴레를 씌워버린 형국.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향한 마을공동체의 몸부림은 계속 되고 있다. 전통문화자원 못지않은 덕수리의 자산은 32만평 목장 부지중에 활용 가능성이 높은 10만평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송태환 이장이 밝히는 내용의 핵심은 승마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마을 주민들과 논의과정에서 나온 비전 제시다. 대대로 내려온 마을공동체의 자긍심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시대변화에 맞게 농외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작업. 농업생산성에만 기댈 수 없는 현실을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하지 않으면 유지도 힘들다는 현실을 많은 사례와 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결과이다. 덕수리 마을목장이 지닌 위치적 요인이 최대의 강점이 될 것이다. 시간적으로 30분 범주 안에 들어오는 관광 관련 시설과 대규모 숙박시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행정지원이다. 조상들의 생업공간이었던 목장이 지금은 하나의 농업경관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형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단순한 승마가 아니라 덕수리 마을 목장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경관자원과 결합해야 경쟁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가 이 소중한 제주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마을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주민소득이 월등하게 높아야 가능하다.

문화적 행동은 마음의 여유에서 발생한다 했으니 덕수리의 소중한 가치를 이어나가야 무형적 정신자산도 계승이 가능하다. 특별한 무엇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음과 적용을 하는 행정적 우매함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시각예술가>

해질녘에 진동산길 위에서
<수채화 79cm×35cm>

덕수리와 산방산이 어떤 관계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산방산의 시각적 존재감이 가장 부각되는 일몰 가까운 시점에 높은 지대에 올라가 바라보면 알 수 있다. 풍수를 중요시 하던 조상들이 분명 저 옹골찬 기상이 느껴지는 위치를 선택해 삶의 터전을 개척하였을 것이다. 산세가 회오리치듯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명암을 통해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산방산의 솟는 힘. 금방 전에 땅을 뚫고 올라온 산이 거침없이 하늘 향해 용솟음 지고.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오르막과 내리막 지형들. 높낮이 모두를 산방산이 주관하여 지휘하는 모습이다. 멀리 바다는 이미 해가 진 듯 어두운 색으로 변하고 있고. 산방산 암벽과 나무들에는 햇살이 미세한 채색을 통하여 신비감을 극대화시킨다. 산방산은 구름과 놀아야 더욱 멋스럽다. 산 뒤에서 햇살을 받으며 산방산의 진가를 더욱 강조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대가 조금 높은 마을 속 건물들이 듬성듬성 저녁 빛을 받아 차분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화면 전체가 노을빛의 향연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산방산의 위엄이 화면 안에 들어와 앉았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모습들이 어둠을 앞둔 시점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이러하다. 포근한 휩싸인 시간을 그리려 했다.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은 거울 뿐이랴 여기 산도 있는데. 바위 암벽에 칠해진 태양광선 물감을 통하여 더욱 친근해지는 산방산의 진가를 발견하려 하는 것.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즐거움이 여기 있다.

종댁거리의 의미를 찾아
<수채화 79cm×35cm>

마을공동체의 결속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여기 와서 보라고 할 것이다. 덕수리 조상님들이 이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불문율을 지키는 문화 속에 산다는 것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이 종소리가 울리면 자신의 일을 멈추고 마을공동체의 소집명령에 신속하게 응하는 의무. 늦으면 눈총을 받으니 뛰어왔을 것이다. 방앗돌을 끌어서 굴려야 하거나 솥이나 보섭을 만들기 위한 쇳물 녹여 부어야 하는 일손이 갑자기 많이 필요한 경우 잠시 모여들어서 후닥닥 해치우고서 자신이 하던 일을 하러 돌아가면 된다. 가끔 다른 마을과 시비가 붙어 패싸움이라도 나면 평소에 단련된 긴급소집령은 그 진가를 발휘했으리라. 우르르 한꺼번에 모여든 인원이 상대 진영을 몇 갑절 압도했을 것이니. 지명 자체가 종을 걸어놓고 치던 곳이라는 뜻의 '종댁거리'다. 지금은 이처럼 상징물 형태로 조상들의 공동체 결속력을 자부심에 담고 있다. 덕수리 정신의 핵이라고 해야겠다. 아쉬움이 있다면 원래 형태대로 돌계단을 만들어 종을 걸어놓는 것. 삼거리에 차량 동선 관계로 저런 모습을 지녔다면 앞에 밭을 사서 길을 넓히고 계단이 있는 원형을 복원하는 일. 민간 모금과 행정지원에 의하여 원형을 되찾는다면 이 얼마나 보람되고 흐뭇한 일이겠는가.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줄 가장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들이 혹시 이런 일은 아닐까. 어떠한 정신문화를 지녔다는 것은 삶의 방식이 그만큼 풍요로웠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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