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근대 이전 지성인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매월당 김시습, 그는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천재로 불린다. 관계와 정치에 발을 담근 두 천재와는 다르게 김시습은 미친 사람으로 또는 기행을 일삼는 괴짜 소리 들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 좋은 먹물들은 시류에 편승해 영달을 꾀하건만, 김시습은 달랐다. 단종 원년 수양대군은 고명대신인 좌의정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들을 비롯해 700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명분 없는 쿠데타로 왕권을 찬탈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쿠데타 세력은 정치적 혼란(政亂)이 아니라 난리를 진압한 정란(靖難)으로 규정했다. 고명대신들의 쿠데타 음모를 수양대군이 역쿠데타로 수습했다고 주장했는데, 오늘 날로 치면 가짜 뉴스다. 4년 후, 기어이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이자 김시습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사흘간 통곡하다 공부하던 책을 불살라 버렸다. 현기증으로 똥통에 빠지기도 했다. 시국에 연루되지 않으려 일부러 미친 짓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 나갈 곳이 없음을 통탄하며 김시습은 지팡이 하나에 여분의 짚신을 봇짐에 매달고 산문을 나섰다. 이후 그는 반평생을 길로써 집을 삼았다. 그의 시 무제(無題) 첫머리에 김시습이 유람하는 모습이 나온다. '짚신 신고 온종일 발길 닿는 대로 가노라니, 산 하나 넘고 나면 또 산 하나 푸르구나.' 관서에서 시작한 방랑은 개경에서 고려의 흥망성쇠를 돌아봤고, 관동을 지나 호남을 유랑하며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해 더 깊은 사유를 하게 된다. 이고자금(以古刺今), 즉 옛일을 회고하고 오늘을 비판하는 자세를 가다듬는다. 김시습은 국가의 흥망성쇠는 어진 몇 사람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수가 있다는 생각에 비통함을 느꼈다. 그의 발길이 여염과 저자거리에 서면 불의한 세상을 풍자하고, 세조의 공신과 변절자들의 면전을 향해 조롱을 퍼부었다.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거사계획 고발로 좌익공신이 돼 두 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84세의 정창손도 표적이 됐다. 김시습은 정창손의 행차와 마주치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놈아, 그만 쉬어라"하고 소리쳤다. 또 세조의 왕권찬탈 일등공신인 권세가 한명회도 김시습을 피해갈 수 없었다. 자랑삼아 서강별장 현판에 새겨 놓은 한명회의 시구를 김시습은 비꼬아서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며 조롱했다. 육조판서를 두루 거치고 대제학을 23년 동안 독점했던 서거정과, 변절자로 숙주나물이라는 멸칭을 받던 신숙주도 김시습의 야유와 조롱을 들어야 했다. 지난 3월대선 이후, 무수한 희생과 고난을 대가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유사 파시즘인 검찰공화국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걱정들이 많다. 권력에 빌붙어 정의를 왜곡하고 도의를 저버린 채 자신의 영달만을 바라는 욀총(聰)들이여, 매월당 김시습의 풍자와 조롱에서 역사를 배우고 자신을 뒤돌아보라!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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