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집회나모임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집회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현수막 또는 광고물, 문서·도화를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한 조항 또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일반 유권자가 선거운동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지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후보자에 대한 견해 표시가 국민주권 행사의 일환이자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2024년 4월 10일 치르는 22대 총선에서는 선거 기간 집회나 모임 등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 집회·모임 금지 공선법 조항 위헌…향우회·동창회 등은 판단 제외 헌재는 21일 선거 기간의 집회나 모임을 금지하고 이에 따른 처벌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심판대상 조항은 공직선거법 제103조 3항의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하기 위한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는 부분과 이와 관련된 처벌 조항이다. 같은 조항의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개최 금지에 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는 "선거에서의 기회균등 및 선거의 공정성에 구체적인 해악을 발생시키는 게 명백하다고 볼 수 없는 집회나 모임의 개최, 정치적 표현까지 금지·처벌하는 것은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 헌법소원은 방송인 김어준씨와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가 청구한 사건이다. 이들은 19대 총선 직전인 2012년 4월 당시 민주통합당 정동영, 김용민 후보 등을 대중 앞에서 공개 지지하고, 트위터 등을 이용해 집회 개최를 사전 고지한 뒤 확성장치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법원은 혐의 일부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김씨 등은 집회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선거운동과 정치적 표현,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선거기간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일반 유권자의 집회나 모임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면 사실상 선거와 관련된 집단적 의견표명 일체가 불가능해져 일반유권자가 받게 되는 집회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정도는 매우 중대하다"며 "해당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선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이 조항은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수단으로서 불가피한 규제이므로 침해의 최소성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대검찰청은 "구체적인 헌재 판결 내용을 확인해 그 취지 등을 검토해 볼 것"이라며 "위헌 판단이 나온 법률로 기소된 공소사실은 철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현수막 등 게시 금지 헌법불합치…확성기 사용금지 합헌 헌재는 이날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현수막, 그 밖의 광고물의 게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공직선거법 조항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광고, 문서·도화의 첩부·게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조항 또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심판대상조항은 공직선거법 제90조 1항 1호의 '현수막, 그 밖의 광고물의 게시'부분과 관련 처벌 조항, 제93조 1항의 광고, 문서·도화 첩부·게시' 부분과 관련 처벌 조항이다. 헌법불합치는 심판 대상이 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지만, 즉각 무효로 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위 조항들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 7월 31일까지만 유효하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이들 조항이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정치적 표현을 장기간 포괄적으로 금지·처벌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 행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밖에 어깨띠 등 표시물 사용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68조 2항, 표시물착용을 금지한 제90조 1항 2호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재는 확성 장치를 사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91조 1항은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확성장치 사용으로 인한 소음을 규제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공익은 이를 제한함으로써 제한받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며 법익의 균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현수막 사용 금지와 확성장치 사용 금지 등 조항은 용산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2016년 총선 선거 기간 김석기 당시 새누리당 예비후보 책임론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현수막과 피켓 등을 게시하고, 확성장치를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벌금 70만∼90만원이 선고됐다. 이들에게 적용된 일부 공직선거법 조항이 헌법불합치로 결정되면서 항소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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