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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5)남원읍 수망리
숨은 절경으로 가득 채워진 생태계 보고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2. 09.16. 00:00:00
마을의 옛 이름에서 깊은 정감이 우러난다. 마을지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수망리(水望里)라고 한자로 표시되기 이전의 우리말 명칭을 다양한 기록물을 추적해 파악한 내용은 이러하다. 물우라, 물우리, 무우리, 무라, 무래. 설촌의 역사를 족보나 고지도에 의존하지 아니하고서도 훈민정음 방식의 우리말 표기 흔적이 확연한 옛 이름 들을 통해 오랜 마을 역사를 확인하게 된다. 어떤 발음을 활자화 하였건 공통점은 '물'이다. 한자 뜻 그대로 물을 바라는 마을. 지금도 가뭄이 들 때, 수영악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이 모자라 물을 바란다는 이름과는 달리, 안을 들여다보면 냇가에 물이 풍부하다. '하데기수' '올리수' '덕작국찌' 등 지금도 물이 충분하게 고여 있어서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약 560년 전 '동방낭 밭' 인근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수망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생업의 방식으로 목축이 번창하던 역사를 보유한 마을이라서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남원읍의 가장 동쪽 마을이기에 가시리와 인접해 있고, 북쪽에 궤팬이오름과 물찻오름 지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의귀리와 접하는 지역까지 크게 펼쳐진 마을, 그 중간 지점 정도에 람사르습지로 보호되는 물영아리오름이 있다. 생태자원의 가치로 세계적인 마을이다. 환경부도 보전가치를 인식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물영아리 습지는 제주도 소화산체 분화구 및 온대산지습지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형과 지질 및 경관생태학적 가치가 우수한 산정화구호로 분화구 안 습지의 육지화 과정과 그러한 습지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연구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라는 것이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영아리 난초를 비롯해 멸종위기종인 물장군, 맹꽁이, 긴꼬리딱새, 팔색조 등이 서식하고 있다. 필자가 물영아리 오름 습지에서부터 오름 둘레를 돌아보는데 노루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숲길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겁도 없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만큼 찾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목축문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잣성이 광범위하게 이어져 있어서 수망리 조상들의 삶을 느끼게 된다. 수렵 또한 수망리의 오랜 전통적 삶의 일부분이었다. 문화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괴야'에 주목한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여럿이 함께 사냥을 나가면 며칠 동안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집단생활을 해야 했다. 숙식을 함께하던 자연암반굴들을 괴야라고 부르던 것. '황칠남도괴야' '아니모든괴야' '샛올리수 괴야' 등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해안가 마을의 어로작업처럼 수렵 또한 중산간 마을의 보편적인 생업의 방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추운 지방에나 있을 법 한 눈 쌓인 야산을 걷기 위해 신는 설피가 수망리의 전통 속에는 존재하니, 겨울 사냥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성행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수망리를 통해 제주의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생활방식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후세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대한 자연자원을 보유한 수망리의 현승민 이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여쭸다. 빙긋이 여유롭게 웃으며 나온 대답은 한마디로 "존뎌내는 겁주!" 견뎌낸다는 의미의 제주어가 가슴을 파고든다. 다른 마을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농경지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마을의 역사이며 불굴의 의지가 되었음을 뜻한다고 했다. 어떤 난관과 시련 속에서도 마을공동체를 지켜온 조상들의 정신을 '견뎌내는 힘'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수망팔경으로 대표되는 숨은 비경들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수망리 전체를 하나의 관광특구로 발전시키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콘텐츠와 환경적 여건과 주민 역량이 뒷받침 되는 마을이다. 경관 중심의 관광자원 중요하지만 수망리처럼 삶의 흔적과 그 의미까지 간직한 마을공동체는 드물다. 아직도 목장조합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제주목축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뚜렷한 자부심 지켜내기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가져온 마음자세를 잃지 않으며 돌파구를 찾겠다는 사람들. 고귀한 마을공동체정신을 느낀다. 찬란한 수망리의 미래를 예감하면서. <시각예술가>



수망사거리의 아침
<수채화 79cm×35cm>


독특한 지형 속에 나무들이 먼저 자라고 사람들이 찾아와 집들을 지었으며, 그 집들을 지으려니 길이 필요해서 길을 냈다. 길과 집, 나무들이 아무리 자기주장을 한다손 지형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다. 북쪽과 동쪽으로 오르막이 있어서 분지가 아니면서도 분지의 느낌을 주는 네거리를 리사무소 옥상에서 바라봤다. 동산을 올라온 아침 해가 빛으로 물상들을 깨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있는 존재들이 먼저 일어나는 과정이다. 2층집보다 더 큰 삼나무 방풍림은 은은하게 빛을 흡수하며 동시에 반사하고, 중심에 지어진 멋스러운 집은 환하게 해를 맞이한다. 아침이라는 일상이 햇살과 그림자 반사광에 의하여 어떻게 공간을 노래하는 지 그려내려고 했다. 초록 지역이 생성시키는 빛의 하모니는 나지막한 집들로 하여 더욱 가치 있게 와 닿는다. 태양광선이 가진 시간성을 한 폭의 그림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수망리. 관심의 시작은 아직도 동산 그림자 속에 있는 주홍색 지붕이다. 숲 속에 숨어서 핀 꽃의 느낌을 주는 저 색. 보색대비랄까. 색의 강렬함과 중심 건물에서 반사하는 빛이 겨루면 누가 이길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림이 사진보다 자유로운 것이 있다면 있는 것을 그리지 않을 권리다. 그 권리가 그림을 통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전봇대를 모두 뽑아버린 상황을 그렸다. 집과 길들이 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을 얻고자. 하늘을 그리지 않아도 빛의 공간감으로 하늘을 대신 할 수 있으리라는 욕심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물영아리오름의 느낌
<수채화 79cm×35cm>


그렇게 배웠다. 그림은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닮게 그리는 것'이라고 말뜻은 이해하지만 그러한 경지를 아직 터득하지 못하였음을 실토한다. 그래도 도전하는 노력은 있어야 하겠기에 이렇게 그렸다. 람사르습지라고 하는 세계적 생태환경자원을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우면서도 겁나는 일인가! 물을 표현해야하고 오름을 표현해야하는 이중고를 극복할 방법 때문에 오래 고민하고, 망설였다. 그런 과정에서 얻은 해법은 종이에 물감이 번지다가 테두리에서 오무라들듯 마르는 시각적 느낌과 오름과 하늘이 만나는 선에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그 느낌을 살리면 오름 전체가 물의 느낌을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 그러려면 담채로 표현해야 하며, 짙은색 연필스케치의 흔적이 물영아리오름의 흐름을 베이스 연주처럼 듬직하게 존재하여야. 그 위에 습지의 물을 느끼게 하는 엷은 청옥색이 전체적으로 채색된 상태.

전체적인 화면 구성이 메시지다. 동양화적인 담채요소를 가지고 하늘과 땅을 흰 여백으로 남겼다. 값이 동일한 하늘과 땅.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하였으니 천지일여(天地一如) 또한 그림 세계에서는 가능하려니와 그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물. 물영아리라는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면 더 닮게 그릴 수 있으리라는 미련함. 평평한 목장지와 오름이 이렇게 잇닿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목장 바닥 그 흰색 빈 공간에 무덤. 백년해로하신 부부가 천년을 누워있는 시공간과 물영아리를 대비시켰다. 사람과 자연이라는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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