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옛 이름에서 깊은 정감이 우러난다. 마을지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수망리(水望里)라고 한자로 표시되기 이전의 우리말 명칭을 다양한 기록물을 추적해 파악한 내용은 이러하다. 물우라, 물우리, 무우리, 무라, 무래. 설촌의 역사를 족보나 고지도에 의존하지 아니하고서도 훈민정음 방식의 우리말 표기 흔적이 확연한 옛 이름 들을 통해 오랜 마을 역사를 확인하게 된다. 어떤 발음을 활자화 하였건 공통점은 '물'이다. 한자 뜻 그대로 물을 바라는 마을. 지금도 가뭄이 들 때, 수영악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이 모자라 물을 바란다는 이름과는 달리, 안을 들여다보면 냇가에 물이 풍부하다. '하데기수' '올리수' '덕작국찌' 등 지금도 물이 충분하게 고여 있어서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약 560년 전 '동방낭 밭' 인근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수망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생업의 방식으로 목축이 번창하던 역사를 보유한 마을이라서 면적이 엄청나게 크다. 남원읍의 가장 동쪽 마을이기에 가시리와 인접해 있고, 북쪽에 궤팬이오름과 물찻오름 지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의귀리와 접하는 지역까지 크게 펼쳐진 마을, 그 중간 지점 정도에 람사르습지로 보호되는 물영아리오름이 있다. 생태자원의 가치로 세계적인 마을이다. 환경부도 보전가치를 인식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물영아리 습지는 제주도 소화산체 분화구 및 온대산지습지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형과 지질 및 경관생태학적 가치가 우수한 산정화구호로 분화구 안 습지의 육지화 과정과 그러한 습지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연구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라는 것이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영아리 난초를 비롯해 멸종위기종인 물장군, 맹꽁이, 긴꼬리딱새, 팔색조 등이 서식하고 있다. 필자가 물영아리 오름 습지에서부터 오름 둘레를 돌아보는데 노루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숲길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겁도 없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만큼 찾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목축문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잣성이 광범위하게 이어져 있어서 수망리 조상들의 삶을 느끼게 된다. 수렵 또한 수망리의 오랜 전통적 삶의 일부분이었다. 문화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괴야'에 주목한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으로 여럿이 함께 사냥을 나가면 며칠 동안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집단생활을 해야 했다. 숙식을 함께하던 자연암반굴들을 괴야라고 부르던 것. '황칠남도괴야' '아니모든괴야' '샛올리수 괴야' 등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해안가 마을의 어로작업처럼 수렵 또한 중산간 마을의 보편적인 생업의 방식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추운 지방에나 있을 법 한 눈 쌓인 야산을 걷기 위해 신는 설피가 수망리의 전통 속에는 존재하니, 겨울 사냥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성행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수망리를 통해 제주의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생활방식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후세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대한 자연자원을 보유한 수망리의 현승민 이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여쭸다. 빙긋이 여유롭게 웃으며 나온 대답은 한마디로 "존뎌내는 겁주!" 견뎌낸다는 의미의 제주어가 가슴을 파고든다. 다른 마을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농경지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마을의 역사이며 불굴의 의지가 되었음을 뜻한다고 했다. 어떤 난관과 시련 속에서도 마을공동체를 지켜온 조상들의 정신을 '견뎌내는 힘'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수망팔경으로 대표되는 숨은 비경들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 수망리 전체를 하나의 관광특구로 발전시키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콘텐츠와 환경적 여건과 주민 역량이 뒷받침 되는 마을이다. 경관 중심의 관광자원 중요하지만 수망리처럼 삶의 흔적과 그 의미까지 간직한 마을공동체는 드물다. 아직도 목장조합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제주목축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뚜렷한 자부심 지켜내기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가져온 마음자세를 잃지 않으며 돌파구를 찾겠다는 사람들. 고귀한 마을공동체정신을 느낀다. 찬란한 수망리의 미래를 예감하면서. <시각예술가> 수망사거리의 아침 <수채화 79cm×35cm> 물영아리오름의 느낌 <수채화 79cm×35cm> 전체적인 화면 구성이 메시지다. 동양화적인 담채요소를 가지고 하늘과 땅을 흰 여백으로 남겼다. 값이 동일한 하늘과 땅.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하였으니 천지일여(天地一如) 또한 그림 세계에서는 가능하려니와 그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물. 물영아리라는 존재를 그렇게 바라보면 더 닮게 그릴 수 있으리라는 미련함. 평평한 목장지와 오름이 이렇게 잇닿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목장 바닥 그 흰색 빈 공간에 무덤. 백년해로하신 부부가 천년을 누워있는 시공간과 물영아리를 대비시켰다. 사람과 자연이라는 여운.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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