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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우리의 여름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2. 09.23. 00:00:00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한라일보] 놀랍게도 올해의 여름도 지나갔다. 갑자기 재채기를 하고 이불을 끌어와 목까지 덮는 순간 이번 여름도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닐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라 하고 바뀌는 바람 같은 것,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가도 그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것들. 그러나 잡을 수 없지만 놓치기 싫은 것들이 있는데 10대 시절이 좀 그렇다. 10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어서 우리는 그 시절이 지나가도 그때의 순간들을 만나면 울컥해지곤 한다. 단지 빛나는 청춘의 얼굴을 마주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뜨겁고 가장 무모하고 가장 진짜 같았던 시간들. 지나가 버렸지만 언제든 다시 마주하면 그 온도에 무너져버리는 청춘이라는 여름. 지난 여름 두 편의 영화가 그 여름을 소환했다.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벌어지는 가슴 벅찬 모험담 '썸머 필름을 타고!'와 고교 시절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우정의 모의고사 '성적표의 김민영'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일본 청춘영화 특유의 활력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고교 영화 동아리의 아웃사이더 맨발이 교내의 대세인 로맨틱 코메디가 아닌 자신의 오랜 애정이 담긴 사무라이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 하면서 펼쳐지는 소동극인 이 작품은 청춘 영화와 SF 장르를 오가는 신선한 구성과 각각의 개성과 매력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좋아하면 뜨거워지고 뜨거워지면 터져버리는 이 청춘들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달린다. 마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인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지금을 위해 스스로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는 이들. 이 작품은 영화광의 영화인 동시에 그 광적인 순간들이 모여 어떤 빛나는 과정으로 기록될 수 있는지를 힘주어 말하는 청춘광의 영화이기도 하다. 무모함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려면 진심을 다해야 하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혼종 장르 영화인 동시에 곳곳에서 영화적 아이디어가 출몰하는 이 영화는 균질하고 매끈한 작품은 아니다. 대신 그 열정과 패기가 너무 애틋해서 이들이 소리쳐 말하는 낭만에 보는 이 또한 대답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저릿한 고백 앞에서 어느 누가 바로 등을 돌릴 수 있겠는가.

'썸머 필름을 타고!'가 뜨겁고 청량하다면 이재은, 임지선 두 감독이 공동 연출한 '성적표의 김민영'은 서늘하고 은은하다. 고교 시절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삼행시 클럽'의 멤버이기도 했던 세 친구의 졸업 후일담이 독특한 리듬감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전통적인 멜로디 라인을 선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엇박의 영화다. 그토록 가까웠던 친구들의 관계가 어긋나는 지점도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의 결도 그리고 청춘 영화를 구성하는 서사의 흐름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뉘앙스로 만들어진 작품이 '성적표의 김민영'이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어떤 시기를 통과하며 멀어진 친구를 위해 공들여 남기는 러브 레터가 그 친구를 향한 진심의 성적표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농익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청춘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있을 때 어떤 청춘은 가장 소중한 누군가와 언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기꺼이 기록하는 수고를 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소우주를 공들여 들여다본 이재은, 임지선 두 감독의 사사롭고 거대한 세계관의 영화이기도 하다.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고 건배사를 하는 이들의 눈 속에서 뭔가 아련한 형체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 말이 그 시절이 아니라 몹시도 그리운 누군가를 불러오고 싶은 주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청춘은 늘 어떤 공기의 흔적 같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누군가와의 추억이 남긴 향기야 말로 시절을 지배한 표식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땀 냄새, 우리가 맡았던 비 냄새 그리고 우리의 코 끝을 여전히 간지럽히던,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의 짜릿한 냄새가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청춘과 여름, 친구와 영화라는 근사한 안주. 아니 눈앞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이미 있다면 이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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