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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54)어느 카페에서 만난 눈물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04. 00:00:00
[한라일보] 탑동에서 장을 본다. 장을 보고 한때 단골로 가던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오늘까지 보내기로 한 원고가 있어서 카페 2층 구석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주문한 커피를 기다린다. 잠시 후 진동벨이 울리자 나는 1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받으면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서는 중년의 남녀를 본다. 첫눈에 왠지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다. 나는 다시 2층으로 올라온다. 평일 오후 넓은 카페 안은 조용하고 가을볕이 창가에 와 부스럭거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검지만을 이용해 자판을 두들기다 문득 고개를 드니 입구에서 봤던 두 중년 남녀가 벽 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고, 그 옆자리엔 딸인 듯한 소녀가 무슨 이야긴가 나누다 막 자리를 일어서는 게 보인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돋보기안경을 내렸다 올렸다 하고, 때론 생각에 잠겨 발밑으로 시선을 떨군다. 낡은 구두에도 감정이 있고 윤이 나는 추억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다시 건너편에 있는 중년의 남녀를 흘깃 쳐다보던 나는 마치 꽂힌 듯 남자의 얼굴을 본다. 남자는 오른손을 테이블에 올리고 그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지만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는 없는 자세이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남자를 여자는 보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을 기울여 남자의 눈물을 손으로 한번 닦아준다. 남자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안경을 접고 눈치채지 못하게 가만히 두 남녀를 조금 더 바라본다.

그때 갑자기 이번엔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서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다 멎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두 사람은 카페 안에서 눈물을 감추어야 한다는 별 의식도 없이 그냥 눈물이 나오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는 심정인 모양이다. 나는 반쯤 몸을 틀어 각도를 옮기고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발을 한 걸음씩 뺄 때마다 파도가 자꾸 밀려오는 것처럼 마음은 먹먹하고 눈앞은 흐려진다. 예전에 누군가의 눈물을 내 마음에 담아도 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게 무슨 일이든 두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한번 두 사람을 쳐다보고 그냥 자리를 덮고 일어선다. 원고는 쓰다만 채.

나는 길을 건너가 탑동 방파제 위로 올라간다. 바다를 본다. 바다에 빠진 듯이 왠지 허우적거림이 있는 날이다. 넘어져서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을 본 것도 같고, 이번 생엔 이렇게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새 한 쌍을 알고 가는 것도 같다. 무슨 사연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가을 한낮 도심 카페에서 서로를 보며 울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며, 나하고 무얼 하고 싶냐고 물으면 같이 울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가을이다. 이미 울 줄을 모르는, 울기를 멈추어버린 사람들도 많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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