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물의 도시 서귀포'의 가치와 가능성을 진단하면서 외국과 국내의 유사 사례를 조명했다. 외국의 사례로는 가까운 일본과 중국을 살펴봤다. ▶마을만들기 롤모델 유후인마을=주민 주도 마을 발전의 롤모델로 회자되는 곳 중 하나가 일본 유후인마을이다. 마을만들기를 얘기할 때 유후인마을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필자가 이 마을 두 번의 방문에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산촌 마을의 수자원이다. 온천과 호수, 그리 마을을 돌아가는 하천에 사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광경은 유후인을 더욱 빛나게 하는 숨은 자원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을 지키고 지혜롭게 이용한 주민들의 노력이 오늘의 유후인을 만든 동력이란 느낌이다. 주민주도 일본판 마을만들기 전형 물을 지키고 이용한 노력 돗보여 한해 국내외 관광객 400만 찾아 유후인마을의 구석구석을 따라가면 작고 아름다운 호수와 시냇물, 길게 늘어선 아담한 상가,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이 마을의 명소인 작은 호수의 이름은 석양이 비칠 때 물고기 비늘이 금빛으로 빛난다고 해 이름 붙여진 긴린코(金鱗湖)다. 이 호수에서 유후인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과 미술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와 마을 풍경. 유후인은 온천마을로 유명하다. 물의 도시다. 유후인 온천의 용출량은 800여 개의 원천(源泉)에서 분당 3만8600ℓ로 일본에서 세번째로 많다. 유후인 역에서 도보로 약 20분 가량 떨어져 있는 긴린코 호수는 바닥에서 차가운 지하수와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샘솟는다. 일교차가 큰 계절에는 호수 주변에 안개가 자욱해 신비롭고 운치있는 모습을 자랑한다. 이 호수에서 생긴 안개 때문에 유후인의 아침이슬이 유명하다. 원래 지명은 '언덕 아래의 호수'를 의미하는 '다케모토노이케'였는데 1884년 메이지 17년 모리쿠소라는 유학자가 온천을 하다가 호수에서 뛰어 오른 물고기의 비늘이 석양에 비쳐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긴린코'라고 지었다. 온천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유후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벳푸의 온천이 개발된 게 100여 년 전이다. 벳푸는 메이지시대에 굴착 기술이 발달하면서 온천 개발과 이용이 본격화됐다. 이에 반해 유후인은 1970년대부터야 온천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후인은 일본 주민자치운동인 '마치 츠쿠리' 성공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로 하면 '마을 만들기'에 해당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호수 긴린코와 연중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그 이유가 읽히는 듯하다. 유후인 주변을 흐르는 시냇물. ▶자연 가치 살린 마을 만들기=유후인의 인구(1만2000명)는 웬만한 제주도 읍면지역보다 적은 수준이다. 그런데 해마다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유후인은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들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을 꿈꿨다. '개발 아닌 개발'을 택한 것이다. 유후인이 온천마을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온천, 산업, 자연 산야의 융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온천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는 건물의 고도와 규모를 제한하고, 댐 건설 반대, 리조트 개발 반대 역사를 통하여 시골 온천의 분위기를 지켜온 점이 특징이다. 일본 최대 온천이자 환락가였던 벳푸와 차별화를 두고 누구나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마을 모습을 그렸다. 최근 벳푸가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에 유후인에 꾸준히 열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민 대표단이 1971년 독일의 온천휴양지인 바덴바덴을 조사하고 돌아오면서 이 같은 계획은 구체화됐다. 주민들은 '풍부한 자연과 온천지에서의 즐겁고 안정된 생활이 유후인의 최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고민하자 행정도 힘을 보탰다.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마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개발을 막아섰다.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1000평 이상, 15m 이상의 건축물은 쉽게 지을 수 없도록 건물 규모와 높이를 제한했다.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건물 위로 마을 어디에서나 유후다케를 볼 수 있는 유후인 풍경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유후인에는 옛 것과 새로움의 조화가 읽힌다. 주민들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그 속에 현대적인 느낌을 더해 특색 있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가 골목을 누비는 한편에는 영국의 클래식카가 마을의 주요 코스를 빙 돈다. 한때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상점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유럽의 한 마을을 연상하게 하는 건축물이 사이사이 튀지 않게 자리한다. 그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기념품, 캐릭터 제품, 액세서리 등은 또 다른 볼거리다. 유후인은 일본 대표 관광지이지만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저 혼자 튀는 건물을 찾기 어렵다. 주민들은 건물을 지을 때 그 소재와 색깔, 건물과 도로의 관계, 자연과의 조화를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건물 사이로 유후산이 펼쳐진 마을 풍경은 주민들이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마을은 문화·예술 요소를 덧입었다. 이 모두가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유후인에선 해마다 5월 영화제가, 7월 음악제가 열린다. 1975년 규슈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마을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였다. ▶마을만들기는 진행 중=작은 산촌마을이지만 유후인은 일본 대표 관광지로 거듭났다. 해마다 400만 명 이상이 찾고 전체 관광객 5명 중 1명이 하루 이상 머문다. 이들이 소비하는 금액이 한 해에 140억엔(한화 약 1400억원)이다. 관광업이 활성화되면서 농업 등 지역 모든 산업에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호황'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가장 큰 것이 교통문제다. 특히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나 휴일이 되면 마을 중심 거리는 꼬리를 무는 차들로 막힌다. 사람들이 모이니 상점도 늘었다. 현지인보다 외부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관광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새로 들어서는 건물로 인해 일본의 옛 골목을 닮은 유후인의 풍경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후인을 산촌마을에서 일본 대표 관광지로 거듭나게 한 것은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이 아니었다. 지역자원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전하려는 주민들의 다양한 시도였다. 주민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거리, 그리고 자원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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