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직권재심 재판 자료사진. 한라일보DB [한라일보] 제주 4·3 당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수형 생활을 하거나 행방불명된 제주 4·3 희생자 30명의 명예가 회복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일 제주 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17차 직권재심 공판에서 피고인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30명 중 6명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를 선고받았으며, 24명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돼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형을 살았다. 검사는 구형 의견에서 "피고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등으로 군경에 끌려가 희생당했다"며 "피고인들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 피고인들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고 측 변호사 역시 "피고인이 아닌 희생자로 명명하겠다. 희생자들은 무고한 양민으로 극심한 이념 대립 양상 속에서 희생됐다"며 "희생자의 무고함이 인정되고 재심이 진행되기까지 유족과 제주도민들의 많은 눈물이 있었던 만큼 늦게나마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변론을 마쳤다. 법정에 나온 유족들이 전한 사연은 4·3 당시 참혹했던 상황과 남겨진 가족들의 한이 고스란히 서려있었다. 고 강운학 씨의 유족 김영범 씨는 "고모할머니께서는 자녀가 5명이 있었는데 그중 4명이 10살을 못 넘기고 사망했고 1명 남은 유일한 아들이 고모할머니의 살아갈 이유가 됐다"며 "그런 소중한 아들이 조 수확을 위해 밭에 다녀온 사이 사라져 버렸고 동네 사람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모할머니는 4·3을 입에 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마음속으로만 괴로워하며 50년 동안 자식을 가슴에 묻고 매일 눈물로 세월을 살았다"며 "고모할머니의 모든 인생은 4·3 사건 하나로 무너졌고 마당 돌담 옆에 앉아 담배 연기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내뱉으며 눈물을 글썽이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했다. 재판부는 "30명의 피고인들이 그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하나도 없다"며 "피고인들은 각 무죄"라고 선고했다. 한편 이날 제17차 제주 4·3사건 수형인 직권재심을 포함해 총 460명이 누명을 벗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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