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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고기 구워 놓겠다는 사장님, '맘 편한 가게' 시작이죠"
행복하게 협동조합이 펴낸 '맘 편한 가게 지도'
발달장애 가족 위한 도내 73곳 가게 정보 담아
부모들이 직접 가게 추천·확인에 지도 제작까지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11.03. 16:05:12

행복하게 협동조합이 '맘 편한 가게 지도'를 배포하는 모습. 사진=행복하게 협동조합

[한라일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는 유독 미용실에 가는 걸 어려워했다. 그래도 지저분해지는 머리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 큰마음을 먹고 미용실을 찾았다. 미용사가 머리를 자를 수 있도록 아이를 붙잡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상황과 자극이 견디기 어려웠던 아이는 돌연 큰 힘을 내 미용사가 쥐고 있던 가위를 맨손으로 잡아 뺐다.

"정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어요. 다행히 가위가 닫혀 있을 때 아이가 잡았던 거라 별 일이 없었지만 더 이상 머리를 자를 수는 없었습니다. 미용사분도 굉장히 놀라 더는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턴 그 미용실에는 가지 못했죠."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만든 '행복하게 협동조합' 김덕화 이사장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는 그만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다. 발달장애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장소도 미용실에 한정돼 있지 않다. 식당, 병원, 마트 등을 이용할 때도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마음을 졸인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가 힘들어 하거나 돌발 행동을 보이진 않을지 걱정돼서다. 김 이사장은 "부모들에겐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는 게 있다"며 "최대한 빨리 피해를 덜 끼치자는 생각에 식당에 가서도 아이들만 서둘러 먹이고 부모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

행복하게 협동조합이 펴낸 '맘 편한 가게 지도'. 사진=행복하게 협동조합

|‘맘 편한 가게’를 만난 경험이 ‘지도 제작’으로

그러다 보니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가게를 만나면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번 간 적이 있던 고깃집이었어요. 전에 왔던 것을 기억하는지 굉장히 특별하게 챙겨주셨지요. 무언가를 요청하기도 전에 더 빨리 가져다주시고요. 저희는 그게 낯설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연신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사장님이 이렇게 말하시더라고요. ‘엄마들, 그러지 말라’고요. 주눅들어 죄송하다고 하지 말고, 당당히 고개 들고 이용하라고요. 다음번에 방문할 땐 미리 전화를 하면 고기를 구워 주시겠다고도 말씀해주셨어요. 아이와 함께 가면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아시고는 해 주신 말이었지요. 그때 무언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아이를 이해해 주는 곳이라면 이렇게 편하게 이용할 수 있구나 하고요. 이런 가게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공유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면 발달장애 가족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게를 모아 보자.' 행복하게 협동조합이 펴낸 '맘 편한 가게 지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 것"이라며 "발달장애 가족들의 절실한 필요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맘 편한 가게 발굴단은 지난 7월에 열린 제주사회적경제한마당에 참가해 지도에 담을 가게를 찾기도 했다. 사진=행복하게 협동조합

행복하게 협동조합은 제주시소통협력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제주탐구생활'을 통해 '맘 편한 가게 발굴단'을 구성했다. 행복하게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부모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발굴단 자체 조사 등을 통해 가게 정보를 모았다. 모인 정보는 발굴단이 다시 확인을 거쳤다. 이후 지도 제작까지 부모들이 직접 나섰다.

그렇게 지도에 실린 가게는 73곳이다. 식당과 카페·베이커리, 마트, 병원, 미용실, 학원·체육관·교습소, 숙소, 편의시설, 체험·문화생활, 사회적 기업 등 모두 10개 분야에서 고루 선정됐다. 김 이사장은 "미용실이나 식당, 병원 등도 이용해야 할 필요는 많은데 (발달장애 가족들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다른 가족이 처음 방문하는 곳이어도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있게,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실제 이용해 보고 추천할 만한 가게를 리스트로 만들어 지도화 했다"고 말했다.

맘 편한 가게 발굴단이 지도를 제작하며 현장 답사에 나선 경기도 안산시의 한 발달장애친화가게. 이 가게에선 발달장애인도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보안대체의사소통도구(AAC) 메뉴판이 사용되고 있다. 사진=행복하게 협동조합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 맘 편한 가게 늘어나길"

맘 편한 지도는 제주도내 곳곳에 전달되고 있다. 발달장애 가족들이 주로 찾는 도내 공공기관과 복지관, 치료실 등에도 배포된다. 행복하게 협동조합 블로그에서도 원본 지도를 내려 받을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제주도사회복지협의회가 복지 서비스를 모아 전달하는 애플리케이션 '제주복지통'을 통해서도 조만간 맘 편한 지도 정보가 제공될 예정"이라고 했다.

발굴단의 노력으로 73곳의 가게가 지도로 정리됐지만, 그 범위가 제주섬 전체라는 점에서 가게 수가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가게 정보를 모으는 기간이 3개월로 짧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 속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가게가 부족한 상황을 드러내는 수치이다.

김 이사장은 "한 번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작은 씨를 심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이 제주 어디에서든 편히 가까운 가게를 이용하기 위해선 그 수가 더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업체의 참여만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맘 편한 가게가 늘어나려면 그 가게 차원에도 적절한 이득, 보상이라면 보상, 유익함이 있어야 할 겁니다. 단순히 좋은 일이라며 선의의 마음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 가족이 방문했을 때 적절하게 응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찾았을 때 제공할 수 있는 쉬운 메뉴판처럼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싶습니다. 지자체도 함께 협력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하게 협동조합은 2021년 9월 30일 창립됐다. '꿈다락토요문화학교'처럼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요리수업, 문화제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협동조합 이름에는 '발달장애 가족 문화기획단'이라는 말을 붙였다. 발달장애 가족도 일상 속에서 여가와 문화를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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