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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2)조천읍 선흘1리
자연자원을 지키는 사명감으로 가득한 마을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1.04. 00:00:00
부유한 마을이다.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풍요를 보유하였다. 가지고 있는 것이 지닌 소중함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본다. 원앙, 왜가리, 검은댕기해오라기, 열대붉은해오라기, 꺅도요, 큰오색딱따구리, 직박구리, 노랑지빠꾸리와 같은 수십 종의 새와 제주도룡뇽, 북방산개구리 같은 생태계의 시금석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동백동산이라고 하는 자연 그대로의 숲, 그 속에 먹이사슬 구조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곳. 이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동백동산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되고, 2013년 람사르마을로 선흘1리가 지정된 것은 동백동산 습지(지방기념물 제10호)라고 하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 받은 것이다. 이처럼 동백동산을 빼면 이 마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마디로 곶자왈이다. 크고 작은 용암덩어리와 나무,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그 속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들. 그 생명력이 소중한 가치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북방계식물과 남방계식물이 공존하고, 난대상록활엽수 천연림이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

설촌의 역사는 대부분 구전에 의한 것이지만 다양한 사료를 종합하여보면 약 750년 전에 설촌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낙선동 일대와 지역 곳곳에 고려시대 기와가 많이 발견되곤 한다. 마을 명칭은 1900년 경, 남단 이태선 선생이 '착하고 높은 산의 기상으로 굳게 뻗어나가자'는 의미로 선흘(善屹)이라 개자(改字)하여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중반부터 웃선흘과 알선흘로 나누어 부른 기록이 있다. 선흘1리는 알선흘 지역. 마을 구성은 본동과 낙선동, 신선동, 목선동 네 개의 자연마을이 합쳐져 이뤄진다.

특히 이 곳은 4·3의 아픔이 큰 마을이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모두 불타고, 가을곡식과 마소를 두고 바닷가 마을로 내려갈 수 없었던 주민들은 '조금 지나면 난리가 끝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묵시굴과 도틀굴에 숨어서 지냈다. 불타버린 마을을 수색하던 군경토벌대에 의해 발각되어 약 1주일 사이에 100여명 가까이 학살당했다. 선흘1리에는 그 당시만 해도 여러 동네가 있었다. 새동네, 큰굴왓, 실물가름, 봉냉이동산, 돗바령, 동카름 등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대부분 학살 당했기 때문에 재건에 필요한 노동력이 없어서 본동을 중심으로 겨우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살아남은 주민들이 강제노역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서 그 비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4·3역사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는 낙선동성이다. 당시 성 안에서 생활하던 초가와 망루를 복원하였다.

부상철 이장에게 선흘1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여쭈자 간명하게 "동백동산 지킴이" 라고 했다. 람사르마을이라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보유하였다는 것은 유지 관리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같다는 설명이 감동적이다.

식물생태자원만 해도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기념물인 만리향과 변산일엽 등 엄청난 생물다양성 자원을 보유한 선흘1리가 이러한 강점을 경쟁력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에 놓여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입장에서 세계무대에 '우리에게는 람사르마을이라는 지역이 있다'며 제주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위상에 걸맞은 프로그램과 자긍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특별한 예산 마련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답이 돌아오고 있는 지 선흘1리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섬 제주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보전 의지와 의식이 주민공감대로 뿌리내린 선흘1리 람사르마을은 사람과 자연이 가장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자연 자원 못지않게 그 자원을 보존하는 지킴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더욱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행정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알바메기오름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방대한 동백동산 일대 초록 숲 서쪽에 집들이 아주 조금 끼어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흘1리의 실체다. 주민들의 마음가짐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각예술가>

속산밭 옆 새물질의 가을풍경
<수채화 79cm×35cm>




신비의 분지다. 이 지점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모두 오르막이다. 보통 다른 지역이었으면 이런 위치에 자연 상태로 큰 연못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집이 지어져 있는 주거 공간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이 대대로 주민들이 살아오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설명에 의하면 시간 당 300㎜이상의 폭우가 내릴 때 잠시 나무토막이 뜰 정도의 물이 고이긴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모두 어디론가 빠져나가 버린다고 한다. 동백동산 서쪽 입구와 잇닿은 길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이런 것. 당연히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과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신비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접시의 중심부와 같은 위치에 늦가을 오후 햇살이 강렬하게 들어오면 사철 초록을 유지하는 나무들과 낙엽이 지는 나무들이 절묘하게 태양광선을 색채차별성 있게 반사하고 있다. 나무들이 감싸고 있는 집들. 이 마을 주민들이 추구하는 환경이념을 그리려 하였다. 필자는 가끔 폭우가 내리는 날 여기에 와보곤 한다. 어떤 숨골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비를 흡수해버리는 것일까? 화산섬이 만들어낸 놀라운 메커니즘이 여기 숨어 있는 것이다. 동백동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숲이 그 많은 물들을 순식간에 빨아먹어버리는 것이라는 동화적 상상력과 함께. 그렇다면 어딘가 빨대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서 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림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 신비의 분지를 연구하여 발표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렸다.

알바메기와 월동무밭
<수채화 79cm×35cm>


알바메기오름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적 표정이 오묘하다. 섬 제주의 모든 오름이 그러겠지만 북서쪽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는 자애로움이 있다. 선흘1리를 너무 동백동산 중심으로 바라보는 경향에 대하여 반발심리랄까, 알바메기오름의 가치를 이 계절에 그렸다. 화면 구성은 상투적이다. 너무도 흔하게 접하는 풍경이다. 구도 또한 그러하다. 문제는 그 평이함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작업은 다양한 원근법 요소를 망라해야 가능하다. 하늘을 흰색 여백으로 하여 땅을 그려야 하늘과 땅 사이에 알바메기오름 그 자연능선을 그릴 수 있다, 11월이면 부지런한 농부가 월동무를 이정도로 푸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시기다. 앞에 돌담은 포자번식이 왕성하여 이끼의 흔적이 표면에 많이 느껴진다. 구름의 영향으로 땅의 명암은 변화무쌍하다. 그 구름을 화면 밖으로 밀어내버리니 깔끔하기는 하지만 중경 정도의 어두운 구름그림자는 허구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화면의 법칙이려니와 둘을 모두 얻으려면 둘을 모두 잃어야 하는 형국이 있어서 하나를 얻으려 하였다. 이 섬의 농촌 풍경 중에서 하늘과 잇닿은 선들의 멜로디. 평온을 연주하고 있는 저 악보를 그리려 하였다. 밭과 들, 그리고 오름이 하모니를 이루는 지금 여기는 파라다이스를 노래하고 있다. 저 초록은 이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의 컬러다. 제주농업경관의 가치를 그리는 것은 풍경화 작업에 있어서 또 하나의 보람이라 생각하며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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