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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피해자·유족 국가 보상금 첫 기부
문형순 전 서장 결단에 목숨 건진 강순주씨 1000만원 기부
4·3 때 희생된 독립유공자 한백흥씨 손자도 보상금 전달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22. 11.18. 16:11:44

18일 4·3 국가보상금을 기부한 강순주씨 아들 강경돈씨(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와 한백흥 지사 손자 한하용씨(사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보상금을 전달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4·3유족회 제공

[한라일보] 제주4·3 당시 민간인 총살 명령을 거부한 고(故) 문형순 전 제주도 성산포경찰서장의 결단으로 목숨을 구한 제주 4·3 피해자가 국가 보상금을 기부했다. 4·3피해자가 국가보상금을 기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8일 제주4·3유족회에 따르면 4·3피해자 강순주(90)씨의 아들인 강경돈씨는 이날 유족회 사무실을 찾아 "故 문형순 전 서장과 같은 4·3 의인들을 기리는 데 사용해달라"며 아버지를 대신해 국가보상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강씨는 "문 전 서장의 정신을 기리고, 목숨을 구해준 데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며 기부를 결정한 아버지의 뜻을 대신 전했다.

문 전 서장은 한국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50년 8월 30일 김두찬 제주주둔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중령으로부터 "성산포경찰서에 예비구속 중인 D급 및 C급에서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서 총살 집행하라"는 공문을 받았지만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며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성산포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221명을 풀어줬다. 문 전 서장의 결단 덕에 당시 아무런 죄 없이 구금돼있던 강순주씨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강씨는 문 전 서장의 업적을 발굴해왔으며 2018년 11월 제주경찰청에서 열린 문 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는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추도사에서 "당신께서 성산포경찰서에 수감된 저를 포함한 죄없는 사람들을 훈방하며 '너희들은 행운아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기억한다"며 "당신의 말씀을 따라 저는 한국전쟁 해병대로 참전했고, 이후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먼저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었다.

이날 독립유공자 한백흥 지사(1897~1948)의 손자인 한하용씨도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 375만원 전액을 유족회에 기부했다.

1919년 조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한 지사는 함덕리장으로 근무하던 1948년 11월 토벌대의 집단 학살을 만류하다 폭도로 몰려 희생됐다. 이날 전달식에서 한하용씨는 "보상금은 내 돈이 아니라 4·3 때 희생되신 할아버지의 돈"이라며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제주4·3유족회는 한씨와 강씨 말고도 여럿 4·3유족들이 기부 의사를 전달해옴에 따라 보상금을 관리할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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