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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7)구좌읍 송당리
제주신화를 통한 정체성, 그 정신문화의 본향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2.09. 00:00:00
[한라일보] 열여덟 개의 오름을 거느리고 초원과 밭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송당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면적이 엄청나게 넓다. 목축산업이 제주인의 생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엄청난 풍요를 누렸던 마을이다. 마소를 키울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이 바탕이 됐기에. 그도 그럴 것이, 조선왕조가 섬 제주의 중산간 지역을 관영목장화해 관리하던 시기에 '일소장'이 있던 지역이다. 첫째요 으뜸으로 파악해도 무리가 없는 목장지대로써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옛날에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손들이 물려받은 농지는 규모가 커서 웬만한 농부들은 몇 만 평을 일구는 기업농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땅부자 마을이다.

그러한 역사적 풍요를 기반으로 해서일까 정신문화 또한 기름진 토양과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주섬 신화의 본고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섬 제주의 숱한 신당들에 좌정한 신들의 계보를 살펴보면 그 맨 윗대에 해당되는 두 분이 송당리 본향당에 계시는 금백주 소천국 부부다. 특히 백주또 여신은 그 권위가 유럽인들의 조상들이 모셨던 헤라 여신의 권위에 가깝다. 섬 제주 신들의 원류요 시조신을 모시는 당이 있는 곳. 구비전승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송당리 본향당은 신화적 배경으로 존귀한 영역이었음을 제주인의 문화 속에 뿌리내려 있는 것이다. 백주또 여신의 남편이었던 소천국은 수렵생활을 하던 존재였고 금백주는 농경을 생활 방식으로 하다가 결혼해 송당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신화적 틀은 학자들에 의해 해석되어지는 바, 삶의 방식을 달리하는 커플이 '결혼' 했다는 것은 이 섬의 역사를 글로 기록하기 전 어떤 시기에 수렵족들과 농경족들이 전쟁에 의하지 아니하고 융합했음을 상징한다. 섬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인정하고 화합해 공동운명체의 길을 제시하는 평화의 뿌리로 필자는 송당리 본향당의 의미를 받아들인다. 전쟁과 갈등이 없이 상생의 길을 신화로 풀어내던 민중적 지혜의 땅. 지금 송당리가 마주하는 현실에 시사하는 의미 또한 크다. 외지에서 송당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주민의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하니 설촌 9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이 보유한 본향당 정신이라면 능히 융합발전의 길을 함께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이 거두는 결실은 송당초등학교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년 전국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에서 주최한 공모에서 학교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유치원 포함 전교생 79명의 학교가 이룬 신화적인 성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을공동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 이뤄낸 교육적 성과다. 올해는 JIBS음악콩쿠르에서 앙상블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농촌마을 초등학교에 당오름관이라고 하는 체육관 겸 다목적 시설에서 10회 넘게 전교생이 목관앙상블로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정기 연주회를 이어온 저력이 거둔 결실. 문화적 향유를 대도시 학교보다 더 크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을공동체와 학교 선생님들의 의지가 참으로 아름답다.

홍용기 이장에게 송당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단박에 대답했다. "본향당". 당오름 아래 본향당이 가지는 송당리의 역사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으면서도 제주도 민속자료 9ㅡ1호가 가지는 위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순하게 무속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공유하였던 숭고한 정신문화자산으로 마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 것.

방대한 영역 속에 펼쳐진 열여덟 개의 오름들을 마을공동체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마을 발전에 커다란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자연환경을 살린 다양한 사업들이 추진돼왔다. 차곡차곡 결실을 맺어야 할 시점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행정적 유연성을 가지고 송당리라고 하는 특수한 지역을 전향적인 자세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자연자원과 문화가 결합해 관광산업이라고 하는 영역으로 생업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송당리. 말을 타고 달려도 마을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는 땅. 네 개의 자연마을 동동, 상동, 서동, 대천동 지금의 모습은 이러하지만 미래에는 분명 몇 개의 자연마을이 더 생겨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의 확신에 찬 한마디. "땅이 너르니 사람들이야 들어와 살겠지!" <시각예술가>



눈부신 마을 안길
<수채화 79㎝×35㎝>


풍경이 화면이라는 테두리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결과물이다. 어떤 공간의 일부분을 가져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12월의 송당리. 겨울임에도 초록을 잃지 않은 돌담 원근이 뚜렷한 길을 걷다가 오래 전에 걸었을 때 느꼈던 그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길을 잘못 찾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밭담과 함께 있던 커다란 삼나무 방풍림들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농가의 모습, 큰 길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나무가 양쪽에 있어서 아치처럼 가지가 이어져 있고 드리워진 그늘 속에서 어러한 눈부신 풍광을 맞이했다. 화면을 대각으로 구분하여 절반이 그늘이니 상대적으로 밝은 부분은 더욱 명도가 높아지게 된다. 햇살의 의미를 그리는 일은 풍경화가 지닌 본연의 의무이기도 하거니와 송당리가 보유한 식생자원과 삶의 공간을 함께 그리는 희열을 겨울 햇살 속에서 누리고자 했다. 돌담이 생성시키는 원근감보다 빛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원근감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그리는 행위는 광량의 차이를 감지해 가져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 미세한 차이들을 통해 현실감을 증폭하는 작업인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발생시키는 대비효과는 크게 2박자의 울림으로 단순한 리듬감을 선물한다. 저 속에 숨어있는 작은 변화들이 화면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그렸다. 빛을 그리기 위해 나뭇잎 하나도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아부오름의 아침 인상
<수채화 79㎝×35㎝>


분화구를 그린다는 것. 그것도 아침에 떠오른 해를 맞이하는 분화구. 하나의 거대한 해시계를 그리는 것이 된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그렸다. 상투적으로 바라보던 시선과는 달리 풍경화를 그려야 하는 목적에 의해 움푹 파인 오름을 그리는 것은 화면 구성에 거대한 고민을 가져왔다. 가로 세로 비례 속에 이 거대한 공간을 넣어야하고 빛과 어둠의 배분을 황금비 속에서 찾아야 하기에 중첩되는 딜레마가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분화구이기 때문에 명암이 솟은 오름과 반대여서 서로 치고 받으며 존재감을 증폭시켜 준다는 것이다. 하늘의 어두운 부분은 오름이 햇살을 받는 위치이고 태양이 있는 위치의 하늘이 밝아서 오름의 그늘진 부분을 더욱 어둡게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근경의 누런 풀들은 12월의 느낌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니 고맙고. 듬성듬성 작은 나무들이 분화구로 내려가는 경사를 표현하기 좋다. 문제는 저 맨 밑바닥 아직도 초록이 있는 운동장 같은 공간이다. 어두운 그림자 지역에 있으면서도 분화구라는 현실을 표현해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자잘한 나무들을 생략해서 그렸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니까. 생략할 권리가 있다. 전체적인 신비감이 완성돼가는 과정 속에서 다시 한번 대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했다. 지구라는 별에는 화산이 폭발하며 그 폭발이 있던 자리에는 우주를 향해 이런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화산섬 제주의 본질 중의 하나를 송당리에서 그렸다. 맨 앞의 소나무가 너무 도드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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