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는 탐라관악합주단이 창단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2년의 일이다. 도두동 소재의 영진육아원 강당으로 창단연주회 준비를 위해 청년 단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알프레드 리드의 A Festival Prelude의 웅장한 사운드가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공간을 채우고 창문에 매달린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의 눈망울과 마음은 신세계로 가득 채웠다. 이선문. 혁신의 이름이요, 개척자의 이름이다. 제주예술이 살아 있는 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1947년 생으로 올해 탄생 75주년이며 그가 타계한 지는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1년 제주에 최초의 음악전문교육기관인 제주대학교 음악교육과가 설치됐다. 음악교육과 설치는 많은 음악교육자와 전공자를 배출해 제주음악예술 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관악활동의 범위를 고등학교 관악대 중심에서 전공자 중심으로 옮겨 이후 전문공연 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2년 이선문 교수와 강경수·김성주·김재용·고동익·고보윤·허성훈·김성훈·황경수 등 대학생을 중심으로 42인 편성의 전문 관악단체인 탐라관악합주단이 창단됐다. 창단 3년 후 제주시립합주단으로 새롭게 창단됐으며 1987년 편성을 재정비해 제주시립교향악단으로 발돋움했다. 후에는 현재의 제주도립교향악단이 됐다. 제주해변공연장 역시 그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제주국제관악제 사무실에서 이상철 위원장과 많은 의견을 나누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예술은 이상의 구현이다. 그는 그렇게 성장과 혁신의 과정을 구현해 냈다. 이선문 지휘자에게 배운 첫 번째 단어는 아이덴티티였다. 우리가 누구인지,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개인의 삶과 단체 그리고 제주음악가로서 최고 수준의 자아실현 이상을 요구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가지길 요구했다. 두 번째는 포용력이다. 탐라관악합주단, 제주시립합주단, 제주시립교향악단을 거치며 그는 지역과 나이 그리고 전공을 떠나 오케스트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많은 인재를 포용했다. 이 포용력은 공동체의 동기부여, 정체성, 방향성을 이끄는 중요한 그의 마인드였다. 세 번째는 인류애이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긍휼함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 안의 희망과 용기 그리고 꿈을 함께 나누며 실천했다. 그는 마음을 담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줬으며 진심 된 충고와 조언을 해줬던 분이다. 제주관악의 현장에서 교육과 공연을 담당하는 제자들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 드리고 싶다. 이선문 선생의 혁신 DNA를 이어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과제는 그 분의 정신을 재정립하는 것이며 활동에 대한 자료수집같은 아카이브 활동이다. 5년 후 부족함 없는 이선문 선생의 80·30주년을 기대한다.<홍정호 작곡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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