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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66)당신을 내가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요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2.27. 00:00:00
[한라일보] 이웃 마을에 도자기를 하는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친구로 대해 주어 가끔 찾아갑니다. 그가 작업실에 쭈그리고 앉아 젖은 흙을 주무르거나 바르는 것을 보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어떤 영혼이 빚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그릇들 앞에서 그와 차를 마실 때 눈은 허공중에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형형색색의 사람이 사는 지상에 내리는 눈은 급전이 필요한 어떤 아버지의 머리 위에도, 병실 창밖을 바라보는 위중한 환자의 눈에도 내립니다. 바람이 치면 어느 계단 밑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누더기 옷들을 겹쳐 입은 노숙자의 엉덩이 근처까지 흰 눈은 밀려 내리겠지요. 외톨이 노인이 말없이 가마에서 그릇을 구울 때, 우크라이나의 혹독한 겨울 속에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거리를 헤맬 때 눈은 하얗게 내려 쌓입니다.

눈을 맞으며 우리는 만납니다. 짝짝이 신발처럼 서로 맞지 않은 형편과 사정을 맞추어가며 한 골목이 다른 골목을 찾아가듯이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사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노래로 당신은 기도로 우리는 눈 내리는 날을 살 수밖에 없고, 늙어가는 삶에 순응하기 위해 혹은 저항하기 위해 함께 눈밭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량과 지식에 굶주리면서 열심히 살았고, 우리에게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동류의식을 가지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어쩔 줄 모르는 마음으로 가보고 싶은 행복이 아직 있으며, 부끄러움에 물감을 더 넣듯이 빨개진 얼굴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에게로, 사랑이 아닌 곳까지도 갈 수 있어서 우리는 오래 만나며 살아야지, 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고 그릇을 굽는 걸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존재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옷섶 어디선가 누에가 먹고 있는 뽕잎 소리 같은 눈 내리는 소리는 영혼의 글귀처럼 소곤거리고, 내가 빚지고 있는 사랑들을 들려줍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결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억일 텐데 지리멸렬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희망과 축복이 되어준 오랜 세월의 기억을 가진 크리스마스가 오고, 그리고 내가 빌고 비는 고독이 이렇게도 느린 걸음으로 늙은 내면을 헤맬 때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세상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 당신을 내가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요.

지난 1년 4개월 동안 계속된 '황학주의 제주살이'는 오늘 자로 마감하렵니다. 매주 찾아 읽어봐 주신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글을 통해 "바람처럼 만질 수 없고 구름처럼 비물질적인" 행복을 찾아 또 다른 만남을 시작할 수 있겠지요. <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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