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대정현성이 축조된 것은 조선 선조 때였다. 성담을 경계로 그 안에는 하나의 큰 고을이 형성된 것이다. 내부 구분을 동성과 서성으로 부르다가 1864년 고종 1년에 동성리가 인성리와 안성리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정성을 근거지로 하여 뻗어나간 마을 셋이 모두 성(城)자 돌림인 곳. 인성리, 보성리, 안성리는 크게 보면 한 마을 같아서 이 곳 사람들이 아니면 마을 구분이 쉽지 않다.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마을 이름이 달라지니 말이다. 그 중에서 인성리를 찾게 된 것은 단산과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가장 한반도 평야지대와 닮은 곳이 있다면 이 곳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농토는 평지이고 거기에 우뚝 솟은 단산이 있어서 야릇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단산은 '소쿠리 단(簞)'이다. 바굼지오름이라고 하는 연유도 이와 같으리라 여기며. 신기한 것은 어찌 조상들은 알았을까? 분화구와 소쿠리 모양이 흡사하거늘 지금의 외형상으로는 분화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데 분화구를 품은 산이었다는 것을. 원래 바다였던 곳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이나 응회구의 퇴적층이 수십만 년에 걸쳐서 침식을 거듭한 결과 분화구의 일부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 산세를 굵게 파악하는 제주 선인들의 시각이 놀랍다. 단산에 오르는 과정에서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은 독특한 경이로움을 제공한다. 단산의 지경은 마을 두 곳의 경계다. 남쪽은 사계리, 북쪽은 인성리라고 하니 안덕면과 대정읍이 단산을 경계로 나뉘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마을이어서 대대로 강직하고 의로운 성품을 가진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삼의사비'에 얽힌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이재수의 난으로 기억되는 역사의 무대가 대정고을이기 때문. 강우백, 오대현, 이재수 3인의 장두를 한양으로 압송하여 처형하였지만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의로운 항거의 주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이재수의 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어진 사람들이 살아서 인성리다. 마을 안길을 다니다보면 그 편안함과 어떤 평화로운 기운이 비단 지형적인 영향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풍겨지는 그 무엇. 보성리, 안성리 사람들과 대정고을과 관련한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치열한 논의 과정에서 주장은 주장대로 하지만 결국 양보의 미덕으로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로 인성리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정향교로 상징되는 유교적 겸손의 터전이기에 그러한 자세와 품성이 기름진 농토처럼 펼쳐진 마을. 마을 안길엔 정갈함이 있다.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지키려는 마을공동체의 묵시적 전통.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인격도야의 깊은 자기관리 능력이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정향교와 추사기념관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마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걸맞은 인성수련관 같은 시설이 있을 만 하다. 어질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청소년들이 배우러 오는 곳. 어른들 또한 어떠랴마는. 이상봉 이장에게 인성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이 무엇인지 물었다. 단박에 나오는 한마디는 "인심이지요." 인심 좋은 곳이라는 것을 다른 마을에서도 모두 인정하고 있기에 자신감 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인심에서 찾고자 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확고하게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자세야말로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핏줄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단산에 올라 인성리를 내려다본다. 도드라진 건물이나 눈에 띄는 건물이 없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조화. 농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행복하겠다.'는 부러움이 일어난다. 단산이 지닌 가장 큰 관광자원은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 환경적 요인에서 어떤 삶이 구축되어 가는 것인지 느끼게 되는 곳. 내가 꾸는 거창한 꿈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모여 함께 꾸는 꿈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시각예술가> 이웃하여 사는 모습 <수채화 79㎝×35㎝> 인성리에서 바라보는 단산 <수채화 79㎝×35㎝>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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