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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수의 문화광장] 견딜 수 있는 힘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3. 01.03. 00:00:00
[한라일보] 12월 중순까지 명상센터 수련실에서 아침명상을 했다. 이른 아침 5시부터 6시 30분까지니 좀 귀찮고 힘들기는 했다. 걷기·앉기·요가·명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든든하고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어 꾸준히 수련을 쌓았다. 12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추워지고 눈도 오기 시작하며 몸이 거부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출장을 다녀오고 날씨가 더 추워지자 이를 핑계로 겨울에는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득 겨울을 맞이하는 철새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겨울의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남으로 가던 철새 떼들이 첫날밤 어느 농부의 밭에 내려앉아 옥수수를 마음껏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난 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하루만 더 쉬어가겠다고 했다. 맛있는 옥수수를 두고 떠나기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날 이 철새만 남고 모두 떠났다. 남아있는 철새는 이렇게 맛있는 것을 두고 떠나다니… 난 하루만 더 먹고 가야지… 그러나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먹는데 취해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더 추워져서 떠나려고 날개를 쭉 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많이 먹고 살이 쪄서 철새는 더 이상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결국 눈 속에 파묻혀 가엽게도 얼어 죽고 말았다. 철새 이야기를 쓰고 나서 '결국 눈 속에 얼어 죽었다'라는 철새의 죽음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 먹이가 죽음보다 더 귀했나? 죽지 않기 위해 옥수수를 먹었는데 죽기 위해 먹은 셈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힘들면 쉬고 싶어 한다. 편하고 싶은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앞에 좀 더 편한 일이 나타나면 다가가고 싫어하면 밀어내는 감정의 본능이 있다. 철새도 먹는 동안은 즐겁고 만족스러워서 옥수수를 멀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먹었다. 그러나 좋은 느낌이 계속되는 동안은 '흥진비래(興盡悲來)'의 현상이 나타날 줄 몰랐다. 좋은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떠나가려고 했다. 좋은 일이 지나면 대개 나쁜 일이 다가온다. 좋은 일이 있는 동안은 나쁜 일을 예상하지 못한다. 과거에 흥진비래의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철새는 과거를 망각한 상태로 현실을 맞이했다.

마음을 닦는 수행자는 추위가 오더라도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이러한 마음을 지켜볼 수 있는 관찰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관찰하는 마음이 본능보다 약하면 따뜻한 집에서 머무르려고 한다. 지금 나는 더 먹으려다가 얼어 죽은 철새처럼 더 따뜻하고자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그러면서 수행자로서 안일해지는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고 있다. 수행자가 철새처럼 나약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아차림이 감각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추위도 견디지 못하면서 배고픔을 못 참는 철새를 가엽게 여기다니 명상을 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은 여기까지다.<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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