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한라일보] 연초의 다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오는 무력감과 의구심들이 녹지 않은 눈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가 호기롭게 시작한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험. 그렇게 넘어지고 주저앉은 상태에서 해는 바뀌었으나 나는 조금도 새롭지 않다는 쓸쓸한 자각마저 더해지면 새해의 첫 달, 1월은 그저 웅크리는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샀으나 쓰지 않은 다이어리, 등록했으나 가지 않는 피트니스, 겨우내 눅눅해진 이불 세탁의 다짐… 이 모든 계획들을 마음먹었으나 여전히 먼지 쌓인 이불속에 갇힌 몸. '아아 어쩌란 말이냐'를 스스로에게 중얼거릴 이들에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찾아왔다. 비록 몸은 코트에 없지만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환호를 막을 수가 없고 늘어진 몸의 감각들을 깨우는 제철 처방 같은 영화. 새해 첫 달의 한 복판으로 향해가는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의 시작을 선물할 수 있을 작품이다. 그러니까 묵혀 두면 안 될, 지금의 영화가 바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지난해 17년 만에 찾아온 속편으로 특히 중장년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탑건: 매버릭'에 이어 전설의 만화 '슬램덩크'가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스크린에 개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만화 '슬램덩크'의 완결판이 나온 후 무려 27년 만에 영화로 재탄생된 것으로 원작 만화를 보며 10대 시절을 보낸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더빙과 자막판 모두 고르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신드롬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의 정치, 경제, 사회면을 다룬 회귀물로서 흥미를 끌었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금은 옛 영광을 잃어버린 스포츠 신문을 다시 보듯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당장이라도 땀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생생한 묘사, 승리를 향해가는 정직한 몸의 움직임이 주는 쾌감, 같은 곳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각기 다른 젊음들의 우정과 반목 그리고 뜨거운 하이 파이브까지 스포츠 성장 드라마의 원형과도 같은 완성도와 흡인력을 자랑하는 '더 퍼스트 슬랭덩크'는 단순히 복고 열풍이라고 치부하기 힘든 견고한 클래식이다. 열심히 산다고 무엇도 달라지지 않고 정직한 이들을 바보처럼 만드는 세상에서 이 작품이 주는 투명한 감동은 어쩌면 지금의 모두가 꿈꾸는 아웃풋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꼼수 없이 펼쳐지는 경기 한 판, 꺾이지 않는 마음들이 일구어 낸 기적 같은 승리는 지금의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겁과 비굴, 비이성과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이라는 코트를 등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열광은 이 작품의 단순하고 씩씩한 감동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결국 '더 퍼스트 슬랭덩크'의 송태섭과 북산고 5인방은 불가능할 것 같던 승리를 거머쥔다. 영화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한마음으로 응원했던 결말을 보여준다. 이 결말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승리 이후이기도 한다는 것을 선수들, 관중들 그리고 관객들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의 승리와 한 번의 패배에 이르는 과정들, 눈앞의 벽처럼 느껴지던 우려와 의심들을 뚫고 지나가는 것들을 몸소 겪어 본 이들에게 성공과 실패는 동일한 무게추로 우리를 쓰러지지 않게 만든다. 결국 최선은 이런 것이라고 명백하게 외치는 이 당당함이 얼마나 근사한 지를 떳떳이 자랑하지 못할 것들을 숨겨 두고 쌓고 있는 이들이 직관하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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