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울'은 제주도 고유어인가? [한라일보] 오름은 산을 의미하는 '올'에서 파생한 말이다. 이 말은 흔히 생각하듯이 '오르다'의 명사형이 아니다. 오름과 기원을 공유하는 말은 북방에서 널리 쓰인다. 몽골어에서, '올' 또는 '울', 러시아어에서 '울라', 만주어에서 쓰이는 '알린' 등이 대표적이다. 신라 향가인 혜성가에도 '오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지금부터 약 1420년 전인 신라 진평왕(서기 584~633) 시기에 지어진 노래다. 그러니 산을 의미하는 오름은 제주도 고유가 아니다. 이 혜성가에 나오는 오름은 풍악(楓嶽) 즉, 금강산을 가리킨다. 그렇게 본다면 그 가까이에 있는 설악산, 서울에 있는 북악산, 관악산, 고려의 수도에 있는 송악산 등은 지금 제주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듯이 '~오름'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금강산이나 설악산은 아주 넓고 웅장하며 높은 산이다. 북악산, 관악산, 송악산 등도 그렇다. 결코 분화구가 있는 자그마한 산들이 아니다. 울산바위. 사진=여행작가 황정희 제공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름'이 나오지 않지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산(山)의 제주 방언이라 풀이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오름은 '산'을 의미할 때만 사용했을까? 현대 국어에 '울다'라는 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있는 '울다'는 그 뜻이 몇 가지가 있다. 창호지, 벽지, 장판지도 '울다'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거나 아픔을 참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다 또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내다'의 뜻이 있다. '늑대 우는 소리'처럼 짐승, 벌레, 바람 따위가 소리를 내는 것도 운다고 한다. '전깃줄이 바람에 운다'처럼 물체가 바람 따위에 흔들리거나 움직여 소리가 나는 것도 운다는 뜻이다. 종이나 천둥, 벨 따위가 소리를 내는 현상도 '울다'이다. '귀에서 우는 소리가 난다'처럼 병적으로 일정한 높이로 계속되는 소리가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데도 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울다'이다. 그 외에도 '상대를 때리거나 공격할 수 없어 분한 마음을 느끼다'는 뜻으로도 쓴다. 그런데 제주어에서는 이와는 아주 다른 뜻으로도 쓴다. '제줏말작은사전'에는 제줏말 '울다'가 등재돼 있다. '습기를 먹은 천이나 종이가 부풀어 오르다'라는 뜻이다. 그 사례로 '도비 잘못하민 울엉 잘도 베리기가 실르메(도베 잘못하면 바짝하지 않고 부풀어서 보기가 무척 싫어지네)'. 이 외에도 창호지를 바르면서, 장판을 깔면서 고르게 잘 펴지지 않고 부풀어 오르는 곳이 있을 때도 '창호지가 운다', '장판이 운다'라고 한다. 또한, '먹은 것이 자꾸 올라오려고 하다'를 '울락거리다', 물결이 크게 넘실거리는 모양을 '울랑울랑'이라고 한다. 울릉도. 울릉도·울산바위 ‘올’의 살아있는 화석 이와 같은 어간의 의미로 볼 때 '울'이라는 말, 즉, 오름의 고어형 '올'과 기원을 같이 하는 이 말은 뭔가 '부풀어 오르다', '위로 솟구치다' 같은 뜻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이 '올' 또는 '울'에서 기원한 오름은 창호지나 장판지에서 나타나는 손톱만큼 작은 것에서 몽골 최고봉 해발 4374m의 나이람달올까지 크기와 무관한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렇게 보면 울릉도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게 점차 '우른셤'으로 발음되다가 '울은셤→울른셤'이 되어 지금의 '鬱陵島'로 표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울산바위는 그럴싸한 전설도 있지만 결국 솟아오른 형태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화석어다. 완전히 멸종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어느 한때 산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였던 사실이 까마득히 잊힌 살아있는 화석이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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