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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당찬 맛집] '오롯이' 이어가는 그 맛
◇ 제주시 아라2동 '오롯'
남편 대신에 아내가 오롯이 지키는 가게
음식맛 재현해 지난 11월 다시 문 열어
"가게에 애착 강했던 그… 잊히지 않길"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3. 01.18. 17:43:57

'오롯'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꼬막 간장 비빔밥.

[한라일보]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지키고 있다. 2017년 한라일보 '당찬 맛집을 찾아서'에 소개됐던 '오롯' 이야기다. 지난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 고(故) 부준선 씨의 젊음이 담긴 가게를 접을 수 없었던 아내 김예슬 씨가 '그 맛'까지 오롯이 잇고 있다.

"남편은 가게에 대한 애착이 정말 강했어요.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은 사람이었죠. 남편의 젊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게인데 제가 접어버리면 남편이 잊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가게를 다시 열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는데, 열고 나니 참 감사했어요. 계속 가게를 해 줘서 고맙다는 분들도 있고요."

꿈 많았던 그의 식당… "정말 원했던 일"

아내의 말처럼 준선 씨는 요리에 꿈 많은 사람이었다. 육지에서 회사를 다니다 "지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향 제주에 식당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미술가가 꿈이었던 그가 그림만큼 좋아했던 게 요리였다. 창업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한 뒤 서울 유명 식당에서 일하며 1년 넘게 가게 오픈을 준비했다. 그렇게 2017년 4월, 지금의 자리에 '오롯'을 열었다.

문을 연지 얼마 안 돼 가게는 입소문이 났다. 국내산 재료로 매일 찬을 바꿔가며 내는 음식은 금세 많은 이들의 발길을 당겼다. 하지만 준선 씨는 욕심내지 않았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가게를 확장하거나 욕심을 부려 손님을 더 받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게 아니고 내가 정말 원했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변질시키고 싶지 않아요."(2017년 9월 한라일보 '당찬 맛집을 찾아서' 중)

제주시 아라2동에 위치한 '오롯'.

그런 준선 씨는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자리에서 딱 10년간 장사하고 싶다." 그 말을 이젠 아내가 지키고 있다.

남편의 음식 맛을 재현하고 가게를 열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4월 문을 닫았던 오롯은 같은 해 11월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1인 셰프(chef)'로 요리를 도맡아 온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전까진 제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쉬는 날에만 가게에 나와 장보기, 재료 손질, 소스 만들기 정도를 도왔어요. 정형화된 레시피도 없었고요. 그래서 남편과 대화를 나눴던 메시지 등을 확인하면서 (이 요리는) '이렇게 했겠구나' 하는 지점을 잡아 두세 달 정도는 계속 만들며 테스트를 했어요. 그걸 토대로 레시피를 계량화하고 직원들과 공유하며 다시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죠." '음식을 어디에서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내 예슬 씨가 "남편에게 배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유기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오롯의 다양한 반찬.

다시 문 연 '오롯'… 정성 담긴 한상에 발길 여전

다시 문을 연 오롯에는 여전히 발길이 이어진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전복 게우 비빔밥, 제주성게알 비빔밥, 꼬막 간장 비빔밥, 한우곰탕 등의 메뉴가 특히 인기가 있다. 메뉴 이름은 '비빔밥'이지만 사실 분위기 있는 정식 한 상이나 다름없다. 전복부터 성게, 꼬막, 멍게 등 식재료의 자연스러움을 살린 비빔밥과 함께 유기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각종 반찬에 국까지.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에게 한끼를 대접하기에도 어울리는 음식이다.

예슬 씨는 "샐러드와 볶음류처럼 꾸준히 잘 나가는 반찬 두 가지 정도는 고정"이라면서도 "요즘처럼 유채나물이 나올 때면 그걸 무쳐 내는 것처럼 나머지 반찬은 다르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롯은 고객층도 다양하다. 젊은 손님부터 중장년까지 그 범위가 폭넓다. 지난 17일 다시 찾은 오롯에선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엄마부터 여행객, 외국인 손님까지 만날 수 있었다.

오롯이 여전히 사랑을 받는 데는 꾸준히 지켜온 원칙도 한몫하는 듯했다. 남편이 쓰고 아내가 그대로 이어가는 '가게 소개'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혼자 또는 함께 편안하게. 집밥이 드시고 싶을 때 혹은 마주앉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끼를 대접하고 싶을 때 오롯을 찾아주세요. 국내산 재료들을 고집하고 그래서 믿고 드실 수 있게 매일 바뀌는 찬, 손수 만드는 양념들, 국내산 고춧가루만 사용하는 김치. 내 가족들이 먹고 내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요리합니다."

오롯은 제주시 신설로 11길 2-10(아라2동 3009-5)에 자리하고 있다. 휴무일인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8시 30분(주문 마감 오후 7시 30분, 쉬는 시간 오후 3시~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오롯의 사이드메뉴인 '가지만두튀김'. 가지와 가지 사이에 양념소불고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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