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천하장사 마돈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그리고 '독전'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의 신작 '유령'은 감독의 개성이 도드라지는 감각적인 시대극이다. 전작들을 통해 '외로운 이가 놓인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 그곳에서 만난 운명적인 타인과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냈던 이해영 감독은 '유령'을 통해서도 그의 시그니쳐라 할 만한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스테이지를 유려하게 펼쳐낸다. 일제 강점기의 경성이라는, 슬프고 아픈 그러나 기이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공간 안에서 스파이 색출 명령이 떨어진다. '유령'으로 의심받은 이들은 벼랑 끝의 외딴 호텔에 갇히게 되고 찾아내야 하는 자와 살아내야 하는 이들 사이에서 멈출 수 없는 격렬한 사투가 벌어진다. '유령'은 고통과 분노의 시기에 진심을 감춘 이들이 오를 수밖에 없던 무대를 설계하는 영화다. 이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기는 최대한 뜨겁고 진짜에 가까워야 한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죽을 수 없는 분명하고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과잉의 적대감과 계산된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안개를 체감하는 것은 영화 '유령'의 백미가 된다. 각기 다른 개성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이는 정무 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를 연기한 배우 박소담이다. 권력의 최측근에 자리한 조선인 유리코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지랄 맞게 소리치며 외딴 호텔의 정적을 깨뜨리는 인물이다. 그는 수없이 옷을 갈아입고 여러 번 화장을 고치며 누구보다 분주하게 무대를 휘저어 놓는다. 극 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들은 '유령'이 누구인지를 의심하고 추리해야 하는 그 시간에 박소담의 에너지에 당혹스러운 매혹을 느끼게 된다. 물론 격한 연기에 누구나 시선을 잠깐 빼앗길 수는 있지만 그는 멱살을 잡듯 어떤 순간들을 거머쥐는 완력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어쩌면 '유령'의 치밀한 작전 중 하나는 배우 박소담에게 충분한 무대를 허락하는 일이었던 것이 아닐까. 유리코가 된 박소담은 마음껏 변신하고 한껏 폭발하고 예상 밖의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임무를 기꺼이 그리고 기깔나게 해낸다.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에서의 강렬한 연기로 영화제들의 신인상과 조연상을 휩쓸며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박소담은 이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물론 두 작품 외에도 '국가대표 2'의 북한 소녀, 애니메이션 '언더독'의 목소리 연기, 독립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와 '후쿠오카', 원톱 액션영화 '특송', 드라마 '청춘기록'과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까지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다채로운 면모를 선보여 왔다. 박소담은 '유령'의 이해영 감독과는 2015년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는데 여러모로 '유령'은 감독과 배우의 재회가 주는 뉘앙스가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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