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의자 김수열 죽은 나무가 산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산 나무는 죽은 나무를 안쓰럽게 내려다본다 폭설경보 내린 눈발 흩뿌리는 겨울이었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하얀 날이었다 무릎 비운 의자가 발등 부은 나무에 눈길 주는 동안 의자를 꿈꾸는 나무는 제 몸 뒤척여 마른 잎 하나 한때 나무였던 의자 무릎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삽화=써머 '물끄러미' 보고 '안쓰럽게' 보지 못하면 서로를 알 수 없고, 서로를 위로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사람이 잘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눈길'을 주는 행위이지요. 내가 눈길을 주지 못해 누군가 슬프고 한참을 죽어갈 수 있습니다. '눈길을 준다'는 것은 관심을 표한다는 말이지만, 그것은 또한 조심성이 내포된 섬세한 동사입니다. 그 조심성은 배려의 일종이지만, 생각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것이고요. 그 생각에 의해 이윽고 '마른 잎' 하나를 떨어뜨려 주는 해맑은 실천이 낳아집니다. 세상엔 폭설경보가 내리고, 눈발 흩날리는 날 눈앞에 두 그루 나무와 빈 의자가 있습니다. 모두 나란히 함께 있지만 그 속에 살고 죽는 엇갈림이 있고, 봄이 돌아와 누군가 무릎에 앉아 주기를 바라는 긴 기다림이 있습니다. 모로 돌아앉아 일부러 눈길을 피해 주는 나무도 하나 나지막히 흔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결국 소멸의 운명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해 취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젊은이에게 '마른 잎' 떨어뜨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리고 꿈꾸는 누군가의 소박한 신생(新生)을 눈보라 맞으며 기도해주는 것이 대체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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